첫 장을 읽자마자 이거 끝내기 전에는 이 이야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겠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오랜만에 이야기 속으로 쏙 빨려들어가는 경험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데... 어서 빨리 읽어서 너무나 빠져나오고 싶었다.
3부의 8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내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무엇인지 알 것 같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것 같은데,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것이 진짜일까봐 두렵고 피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사건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데 책을 덮기 전까지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러 인물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데 마음에 들었던 것은 신유나의 시선은 없다는 것이다. 신유나의 변명을 듣게 될까봐 내심 걱정이었는데...
지유의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힘들었다. 여전히 지유에게 마음이 쓰이지만 처음처럼 막막하게 눈물이 앞서지는 않는다. 지유가 아빠냐고 외할머니냐고 이모냐고 물어보며 엄마와의 약속을 뒤로하고 그 방을 나왔을 때부터...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을 읽은 뒤의 감상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친다.
내가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차은호에 대한 분노.
노아의 죽음에서... 노아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면서도 같은 또래의 지유를 대하는 태도에서... 이 인간은 교훈이 없는 인간이라며 분노했다.
노아의 죽음에 분노하고 자책하고 해결하고 싶어하면서도 실제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또 회피한다. 지유와 신유나의 소리를 들었지만 모녀사이의 문제에 끼고 싶지 않아 서재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저거 뒷통수라도 때려줘야겠다며 분노했다.
그리고 먼저 책을 읽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차은호 죽어? 차은호가 죽을까 걱정되어 물었던 것이 아니라 살려두기 싫어 물었던 것이다.
그 다음이 지유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슬픔이었다.
차은호에 대해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내게 있는 차은호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차은호의 첫 결혼은 딱 지같은 사람을 만나 도망쳤지만 딱 지같은 사람은 자기처럼 도망친다. 두 번째 결혼은 자기 엄마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차은호. 이 교훈 없는 인간은 문제로부터 도망만 다니다 자기 목숨도 위태롭게 만들고 아무 잘못도 없는 목숨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나도 가장 손쉬운 모르는 척하며 가장 중요한 일로부터 도망쳤다.
그냥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다. 읽은 뒤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지만 다 집어치우고 ... 재미있다. 지유와 재인이모, 신유나... 모두 곁에서 살아숨쉬는... 읽는 내내 이야기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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