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6/90

쫌~ 2024. 10. 25. 09:54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에 총 90페이지(이야기는 73페이지)의 가벼운 책. 앉은 자리에서 호로록 한 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에 붙인 인덱스가 6개. 요즘은 인덱스 붙이기에 인색한데(다음 인덱스를 붙이면서 지난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고 떼어오기도 하는) 더 붙이고 싶었지만 참으며 소장 욕구를 불태웠다. 

 떡집에 들어가게 된 날과 떡집 아들. 저녁 산책을 나가게 된 이유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그와 그의 완벽한 강아지 약밥. 작위적이지만 너무나 갖고 싶다고 느낀 일상이었다. 모림의 담백하다 못해 건조한 듯한 생활 태도와 그렇지 못한 마음의 움직임까지 내 옆의 누군가 아니 내 이야기. 책을 다 읽은 뒤, 마치 모닥불 옆에서 유쾌하게 떠들고 각자의 텐트로 들어가며 따스하게 데워진 단단한 작은 조약돌 하나를 주워 손에 꼭 쥐고 만지작 거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작은 즐거움.  

   그러다가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책과 연필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돈을 벌러 회사에 다니는 사람1'로만 살지 말고 다른 몰두할 만한 뭔가를 찾아 힘겹지만 황홀한 어떤 작업을 해야할 것 같은데, 싶은 초조함이 들었고, 그런 마음이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그 초조함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pp.10-11
 
 그러다가 문득, 나는 언제나 무너가가 고프지 않은 동시에 고팠는데, 그게 아마도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있기는 있는 동시에 없는 것만 못하게 있는 것이다.  p.45

 맞아요. 성아도 그게 불안이라고, 머리 말고 몸을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하면 그런 불안은 사라진대요. 플래너 계약, 웨딩홀 계약, 드레스 예약, 사진 촬영, 신혼집 계약, 이렇게 쭉쭉쭉 가다보면 너무 바빠서 웨딩 업체의 부당한 갈취에서 오는 정확한 분노나 돈만 있으면 더 좋은 걸 할 수 있는데 돈이 없어서 더 좋은 걸 할 수가 없는 정확한 안타까움만 있고, 구름처럼 뭉게뭉게한 불안은 없대요. 이인삼각처럼 둘이서 그걸 다 해내고 나면 성취감도 든다고.   pp.48-49

 누군가가 좋아질 떄, 나는 나의 안 좋은 상태를 털어놓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나의 안 좋은 상태를 털어놓고 싶어질 때, 나는 내가 그 누군가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게 된다. p.64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게 아주 많다고. 내 재미없는 회사 생활, 생생하게 듣게 될 성아의 결혼 준비, 그 속에서 느끼는 약간의 보람과 우정, 때때로 솟구치는 권태와 수치심, [팔뤼드] 다음에 읽을 책, 복불복인 생리통, 이 시대에 사는 곤란과 알 수 없는 사랑의 막막함에 대해, 그런 걸로 켜켜이 쌓인 현재라는 시간에 단단히 눌러 있는 시루떡 속 팥 같은 나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내가 너를 속으로 뭐라고 부르는지 아냐고 묻고 티튀루스, 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네 덕분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스스로를 '회사원1'보다는 '모림씨'라고 생각하고, 회사에서 일을 그르치고 욕먹을까 전전긍긍하던 것 외에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졸아들고 마음이 급해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  pp.68-69

 어서 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봐요.  p.73

 작가에게 영업 제대로 당함.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 

 [팔뤼드]의 주인공이 쓰는 글의 주인공 이름은 티튀루스이고나는 이 인물이 써 내려가는 속마음이 마음에 든다. "나는 타튀루스. 혼자이고, 사색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책처럼 풍경을 좋아한다. 내 생각은 슬프고, 진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울하기까지 하니까. 그래서 나는 내 생각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그리고 내 생각을 산책시키고자 벌판을, 평온하지 않은 못을, 황야를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내 생각을 천천히 산책시킨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두근거린다. p.11

 심지어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는 다면... 분명 읽을 책 목록을 적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업왕.

'들려주고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얼빈  (2) 2024.10.31
장르가... 잔잔한 소름?  (0) 2024.10.27
여행  (1) 2024.10.24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  (3) 2024.10.23
제목이 기가 막히다. 도둑맞은 집중력  (8)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