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하얼빈

쫌~ 2024. 10. 31. 14:36

 안중근(1879 - 1910.3.26.).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순국한 독립 운동가. 

 1909년 10월 26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일이다.

 끓는 마음을 안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없었던 안중근은 이토의 하얼빈 방문 소식을 듣고, 품어 왔던 뜻을 이루고자 한다. 하얼빈으로 가야 할 이유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던 우덕순과 함께 하얼빈으로 가서 거사를 치루고 재판을 거쳐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를 다룬 소설.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선택에 대한 고뇌. 자신의 일로 처자가 조선의 땅이든 어디든 일본의 힘이 미치는 곳에서는 살아가기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 장자의 책무. 그럼에도 할 수 밖에 없었던 일. 

 상해에 돈을 가진 자들은 더러 있었으나 뜻을 가진 자는 없었다. 돈을 가진 자들은 안중근을 대문 안에 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돈 가진 자들은 세계정세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한유한 선비의 풍류처럼 말했다. 동북아와 구미 열강의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안중근에게 허황된 사업을 도모하지 말고 조선으로 돌아가 시골에 작은 학교라도 차려서 교육으로 백 년 앞을 준비하라고 충고하는 자들도 있었다. 충고는 간곡했다.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p.24

 동학군이 마을을 약탈하고 지나가면 관군이 들어와서 동학군에게 식량을 내준 백성들을 잡아갔다. 동학군이 관아를 불지르고 아전들을 죽이면 아전의 아내가 동학군의 은신처를 밀고 했고, 끌려가서 죽임을 당한 동학군의 아들이 밀고자를 죽였다.  p.179

 지방 군수와 서생들 중에서 힘있는 자들이 사죄단, 위문단을 구성해서 일본으로 가면서 그 여행 비용을 주민들에게 걷었다. 뜻있는 자들이 모여서 이토의 죽음을 사죄하러 일본에 가려고 13도 인민 도일 대표단을 결성했다.  p.205

 이토가 죽은 직후 조선 반도의 정적에 불온한 준동이 숨어 있으리라는 통감부의 정세 판단은 정확했다. 괴기한 적막은 오래가지 않았다.  p.206

 우덕순 같은 하층의 불량배에게 정치사상이 있고 그것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정신의 용력이 있다는 것을 미조부치는 인정할 수 없었고, 그것은 본국 외무성이 이 재판에 요구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p.211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p.221

 -안중근은 의병으로서 한 일이라고 하는데, 그대는 의병과 관련이 있는가?
 -나는 다만 일개의 국민으로서 했다. 의병이기 때문에 하고 의병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p.232

 질문이 답변을 누르지 못했다. 질문과 답변이 부딪쳐서 부서졌고, 사건의 내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엮어나가지 못했다. 밥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  p.234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p.236

 작가의 후기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안중근의 가족들, 신부님, 우덕순 등)의 생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광복이 1945년에서야 이루어지니 안중근의 거사 뒤에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은 30여년을 더 살았다. 일제 치하에서 안중근의 가족으로.. 대한국인으로.. 안중근이 동생에게 유언을 남기는 장면에서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밖에 없다. 길이 빤히 보일 때는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말아라." 라는 대사가 안중근의 거사를 가장 잘 나타내었다고 생각했다. 자식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아비와 어미가 함께 치욕의 땅에서 살아가는 대한국인의 삶이라고 크게 달라겠는가 싶지만 그래도 선택권조차 없었던 그의 아이들에게는 너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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