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세계

쫌~ 2024. 11. 5. 09:18

 안전 가옥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상호대차를 신청했던 책. 초록 안의 세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지라 재미있을까라는 우려로 책장을 넘겼다. 서너페이지를 넘기자 바로 식물의 공격으로 초토화 된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루한 배경 설명에 초반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아서 좋았다. 급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 충격적인 사건들 중 납득 가능한 이해를 깔고 서서히 다가오는 것들이 얼마나 있었나? 최근 10여년간 일어난 원인도 수습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보다 십수년전 UFO 등장 사건이나 외계인 납치 사건등이 더 그럴 듯하게 느껴지니... 인류를 공격하는 식물의 등장은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납득 가능한 사건처럼 느껴진다. (물론 작가는 친절하게 어떤 연유로 이런 식물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뉴스 속보로 알려줌)


주인공은 살아있으니 살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갑작스럽게 닥쳐 온 재앙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살아있기에 그냥 살아가던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극단적 위기의 상황을 보여주면 늘 등장하게 되는 인간의 모습들도 보게 된다. 나는 어떤 모습을 선택하는 사람일까? 

 "이건 말도 안 돼요."
 "그렇죠? 점수를 자기들 마음대로 바꿔요. 말이 되나요?"
 "아니요. 점수요. 사람마다 점수를 매긴다는 거, 그게 말이 안 돼요." 
 형운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연서의 말을 부정하는 건지, 그 말을 되돌아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네 사람의 발걸음과 나란히 걷는 관리자들, 그리고 척, 척, 소리를 내며 끈적한 피가 식물과 맞닿는 소리만 남았다.
 "똑같은 소리를 하네요."
 "네?"
 뒷모습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연서는 물었다.
 "당신이요. 선우하고 똑같은 말을 해요."   p.141


 연서는 학교 담벼락을 한 바퀴 돌며 조각들을 맞춰 보았다. 오로지 학교만이 유지하는 평화, 그것은 인위적인 조작에 불과했다. 한교를 운영하는 소수의 사람과 생활이 굴러가도록 유지하는 다수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 쓸모없음을 쓸모 있게 증명 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쓸모 없음은 자신의 의지나 능력이 아닌 최상위자가 정했다.  p.144


 "저는... 안 갈래요."
 "...뭐?"
 "저는 여기가 좋아요. 엄마도 있고, 밖은 무서워요. 나가면 식물에 곧장 잡혀 버릴 것 같아요. 여기는 적어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요. 그냥 여기서 엄마랑 계속 있고 싶어요."  p.145

 
 "여기서 나가요."
 "...나가면 뭐가 달라질까요? 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어요. 결국엔 선우를 죽인 것도 나예요. 선우를 죽였는데, 내가 살아도 될까요? 나간다고 살 수 있을까요? 살아야 할 의미가 있을까요? 밖에서 또 누구를 죽여야 하면 어떡해요. 그게 또 선우면 어떡해요. 선우는 여기서 저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근데 제가 죽였어요."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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