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장르가... 잔잔한 소름?

쫌~ 2024. 10. 27. 16:08

익숙한 일상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감각 기관이 유난스럽게 예민해지는 순간에 끝없이 뻗어나가는 생각을 부여잡지 않으면… 이 책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댐 방류 이후에는 약간의 기괴함으로 이질감이 생긴다.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약간 현실과 떨어져 있는 이야기라는 안심 장치가 된 결말.

지방 출신인 이쓰미는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렸다. 아이가 없는(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도 했지만 부부 둘만 살아가기로) 2인 가구. 어느 날 남편은 씻기를 거부한다. 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쓰미는 남편의 상황을 짐작하며(회사에서 무시당하는 직장내 괴롭힘이 아닐까) 그의 상태를 지켜봐주며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쓰미는 그의 결정이 싫다. 나약한 그가 싫지만 내색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이쓰미의 남편도 이쓰미의 마음을 몰랐을까? 이쓰미가 남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기괴한 장면들은 사람들끼리의 관계성이다. 그 누구와도 실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부모와 자식도. 부부도. 점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를 과하게 존중하여 각자의 무중력 공간이 존재한다. 비를 맞으며 동네를 다니는 젠시의 모습에서. 냄새가 나는 몸으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모습에서, 점심 시간에 직장에서 사적인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클라이밍 손가락 테이핑 중에 버디 테이핑이라고 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손가락과 옆의 손가락을 함께 테이핑하여 힘을 빌린다. 때로는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사적인 공간이 꽤나 두툼하다. 누군가를 침해하지도 않고 침해받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좋으냐고 묻는다면… 글쎄.

 도쿄 사람들은 망각에 능해서 저렇게 눈앞에서 떠난간 일을 계속 곱씹지 않는다. 그러니 괜찮다. 여기는 도쿄니까. 3월의 야밤에 폭우를 맞고 흠뻑 젖은 남자가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스쳐 지나갈 때 잠깐 흠칫하며 웬 남자가 완전히 다 젖었다고 생각할 뿐. 몇 미터만 가면 그 남자도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p.52

 먹고 살려면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늘 돈이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느 사이엔가 생활을 바꾸는 데 필요한 돈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pp.136-137

 자신의 결심이나 생각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어떤 순간에 결심했다기보다, 어느 사이엔가 결정했던 일을 시간이 꽤 흐른 뒤에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이게 최종 결정이겠구나"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의 순간은, 누군가와 대화할 때 자신이 쓰는 미묘한 표현에, 선풍기 날개가 부러졌는데도 곧장 새 선풍기를 사지 않는 행동에, 매일 열심히 확인했던 뉴스 사이트를 사흘이나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 찾아오곤 했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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