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한 조각을 그냥 던질 수 있는 것이 단편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딱 애매하게 끝이 난다.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그냥 던진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뻗어 나가는구나가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새로운 발상일 때다. 그 아이디어가 새롭지 않을 때는 작가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지가 궁금한데 단편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책도 비슷하다.
한동안 책도 충동구매하던 시기가 있었다. 정세랑의 추천사에 적힌 딱 이 문장 하나 때문에 구매했다.... 잘 읽히되 멈춰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책을 다 읽은 뒤의 내 생각은 정세랑이 담임이 생기부 적듯이 적은 것 같다는... 물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내가 소설에 기대했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어서 약간 아쉬움이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 가장 불편했던(마음에 많이 남았다는 것) '미션', '개 다섯 마리의 밤'
공항에 배웅하러 간 미경에게 수아는 말했다.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영원히 이곳을 떠날 거라고. 미경은 걱정 말라고, 자신이 수아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 너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수아는 미경을 보면, 미경과 함께 차가운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했던 날들이, 그 이야기 속의 날들이 떠올라서 괴롭다고 말했다. 그 모든 것과 결별하기 위해서 미경과도 영영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수아는 미경에게 바뀐 휴대폰 번호도, 새로운 주소도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났다. p.92
그래, 밤을 버티게 해주는.
지유는 묻고 싶었다. 나는 너를 버티게 하지 않니? 너는 나를 버티게 할 수 없니? 준희는 지유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끄고 이부자리를 폈다. 지유는 등을 돌리고 누운 준희의 옆에 누웠다. p.230
각 단편들끼리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짝들이 있다.
애써서 외면있던 생각들이 건드러진 그래서 마음 한편이 무거운...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고 누군가의 생각을 따라가고 싶은...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싶은 이슈들을 만나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가는 큰코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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