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쫌~ 2024. 2. 25. 23:34

이 책의 장르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무엇에 관한 이야기야?라는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에게도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책이 언어에 대한 책이라 답하기로 했다. 이 세계를 규정하고 있는 언어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나를 가두고 있는. 내가 갇혀있기를 자처한 언어들에 대한 생각들이 퍼져나갔기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이 영역 저 영역 스리슬쩍 넘나드는 방식이 고급지다. 아쉬운 점은 작가의 언어 그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 매우 시니컬한 사람이지만 유쾌한 유머도 있어 보이는데 그런 위트 있는 표현이 번역체로는 조금 어색했다. 이건 같은 문화권이 아닌 독자의 슬픔이자 내가 극복해야 할 것이니... 그저 아쉬울 뿐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괴로운 시기에 수집이 줄 수 있는 달콤한 위안에 관해 연구해 왔다. 수십 년간 강박적인 수집가들과 상담해 온 심리학자 워너 위스터버거는 <<수집:다루기 어려운 열정>>에서 수집 습관이 모종의 "박탈 혹은 상실 혹은 취약성"이 발생한 후 급격히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새롭게 하나를 수집할 때마다 수집가에게는 폭발적인 도취감을 주는 "무한한 힘의 환상"이 흘러넘친다고 말했다....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일에서 "파멸적인"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p.31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p.66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유명인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의 꺽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준다. 불굴의 의지라는 표현이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 이 책은 중.꺽.마.의 표본인 (나는 잘 몰랐던) 유명인의 평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시큰둥하게 책장을 넘기다가 어랏!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재미있어졌다. 
조던의 원동력도 궁금했지만 밀러가 포기하지 않고 굳이 조던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마음도 궁금했다. 조던같은 사람들이 분명 꽤나 있었을텐데 조던이었을까? 그리고 조던에 대해 알아가면서 더이상 그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순간도 (나는 그가 2번째 부인을 얻고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보냈을 그에 대해 이상 알고싶지 않았다.) 있었을텐데 그를 놓지 않았을까? 어떤 일의 최전선에 있는 자들만이 느낄 있는 감각이었을까? 뭔가 있다. 설명할 없지만 분명 나는 보았다고 느끼는.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 정의,향수,무한,사랑,죄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천상의 에테르적 차원에서 머물면서 인간이 발견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 전쟁,휴전,파산,사랑,순수,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p.93

이 단락을 읽자마자 열의 아홉은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를 떠올렸으리. 😁 나 역시. 더불어 떠오른 책이 있었는데, 우루시바라 유키의 충사라는 만화책이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 그러면 단지 그 행위만으로 새로운 종이 탄생했다. ... 미지의 생물에게 자신의 깃발을 꽂기 위해 그는 주석 이름표에 그 성스런 이름을 펀치로 새기고, 그 이름표를 유리단지 속 표본 곁에 담그고 뚜껑을 닫았다. 우주의 또 한 귀퉁이가 포획된것이다. p.106
당신 삶의 30년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무엇이든 당신이 매일 하는 일, 무엇이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 그것이 아무 의미 없다고 암시하는 모든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중요한 것이기를 희망하면서 당신이 매일같이 의지를 모아 시도하는 모든 일들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그 일에서 당신이 이뤄낸 모든 진척이 당신의 발치에서 뭉개지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고 상상해보라. ... 그 47초 사이에 창세기가 뒤집혔다. 그가 꼼꼼하게 이름을 지어줬던 물고기들이 다시금 형체 없는 미지의 존재들로 돌아갔다. p. 111
하지만 받아들이자. 이것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혼돈이 지배한다는 것, 나에게는 이보다 더 분명한 메시지는 없어 보였다. p.113
이 난장판을 어떻게 다시 수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차가운 물과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적어도 당장은 이것들을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p.115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사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그의 생애를 점점 더 알게되면서 실망감에 치를 떨게 된다.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p.130
그릿. ... 좌절을 겪은 뒤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능력, 또는 더크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말이다.  p.143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 "조던의 재능 중 특히 양날을 지닌 재능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그런 다음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그는 자신의 관용과 관대함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조던은 파리 한 마리를 잡는 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p.151

신념을 가진 사람의 무서움. 우생학에 대한 입장에 대한 헬렌켈러와 조던의 차이. 자신의 신념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신념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태도.

그의 강철 같은 근성.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하지만 그 정도로 자기 확신을 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굳은살이 단단히 박히고 그 어떤 방해물에도 끄떡도 하지 않게 되면, 결국에는 한 여자의 목숨까지 끊어버릴 수 있게, 아니면 최소한 그 죽음의 진실을 기꺼이 은폐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p.171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 개념이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거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p.189
"자기 길을 막는 모든 걸 뭉개버릴 수 있다고 믿는 그의 능력은 자신의 길이 진보로 이어질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면서 몇 배는 더 커졌다." 데이비드는 공개적으로는 자기기만을 그토록 공격했지만 사적으로는, 특히 시련의 시기에는 더욱더 자기기만에 의존했던 긋하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긍정적 착각은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 그 심리학자들의 말이 옳았던 것 같다.  p.202
데이비드가 자연에서 진리를 찾으라는 자신의 충고를 따랐다면, 그 역시 그 논거를 보았을 것이다.  p.205

이제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하던 질문을 애나에게 한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p.226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p.227

지구상의 질서라고 불리는 것. 규칙이라는 것은 모두 인간 중심으로 인간이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해하고 무해한 것을 우리가 규정한다. 수십년 전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옳지 않는 것이 됨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여전하다. 우리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p.242
"그런데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물고기의 반대편에 다른 뭔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은 그 결과로 또 다른 어떤 실존적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248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p.250
우리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것 말이다.  p.251
..."언어적 거세"라고 표현했다. 즉 그것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해 동물들의 중요성을 박탈하는 방식이자, 우리 인간이 정상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단어들을 발명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세계를 경험하는 제한된 방식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것이 ...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p.252

... 둥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무리 편안하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내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했고, 혼돈 속으로 다시 들어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봐야 했다.  P.255

그 열쇠를 돌리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단어들을 늘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다.  p.267

책을 다 읽고도 독서 모임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정리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시작을 못하겠더라는... 나누어 작성하다가 저장 문제로 한 번 날아가고나니 영 다시 시작할 기분이 안나더라는.  이번 책의 교훈은 바로 바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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