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아무튼, 시작(3)-1

쫌~ 2024. 4. 15. 12:11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라는 아무튼 시리즈. 
3월 독서 모임 책은 아직도 진행중. 여전히. 완독하지 못하고 모임을 가졌지만(머쓱) 진심으로 그 책은 재미있었다.  압박감없이 읽으니 더욱 천천히 읽게 되는 단점이 있지만...

얼결에 병렬 독서인이 되면서. 4월 독서 모임의 주제를 잽싸게 제안(좀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고 싶어서. 3월 책 흥미롭지만 넘 두껍)했다.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골라 읽어요.
모임 전까지는 비밀이예요.
그 날 자신이 읽은 책을 영업하도록 합시다!
아! 그리고 나의 아무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라고 다다다다다다 제안!!

다음 날 바로 이북으로 아무튼, 할머니를 구입. 실은 난 할머니와 어떤 애틋함이나 특별한 유대감. 뭐 우리만의 서사 이런 것이 없다. 시리즈를 쭈욱 보다가 낯익은 이름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져 구입. 몇 해 전에 주구장창 듣던 노래를 부른 가수가 저자인 것을 보고, 단지 그의 글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인근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 프로그램(독서마라톤. 아이디어가 재밌)에 참가 신청을 하면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다 아무튼 시리즈 코너를 둘러보았다. 그래! 딱 손바닥만한 크기. 적당히 얇아서 부담없는 책. 그리고 미친 스펙트럼의 주제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뷔페로 준비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서가에서. 또 이 책을 뽑아들었다.
아무튼, 장국영 (3)

ni ruo shang zai chang
chun xia qiu ding gai hen hao

나의 어린 시절은 홍콩 영화 전성기였다. 주말 저녁마다 부모님과 황비홍 시리즈를 봤고, 포커를 홍콩 영화로 배웠으니... 성냥개비를 콧구멍에 넣는 것은 모두의 개인기였다고. 그 때의 기분에 젖어 고른 책이었는데... 이 책은 장국영에 대한 책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책이었다. 처음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최애를 대하는 사람의 삶을 조금 엿보는 재미로 아쉬움을 달래보았다. 책 말미에 드러나는 출간 의도(?)를 보니 매우 충실한 작가님이셨다.
홍콩 영화 전성기를 떠올리면 그 나이의 기분으로 들떴던 것으로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아무튼,ㅇㅇ 의 주인공은 oo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면 좋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장국영이 그려지기도 해야겠지만 장국영을 좋아하는 나, 그의 영화를 보고 또 보고, 그의 음악을 듣고 또 듣는 나, 그런 나의 마음이 글의 중심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p.161

 
아무튼, 산 (1)

바로 이 책이었다. 내가 아무튼 시리즈를 시작하며 기대했던 것(?)들이 충족되었다. 내 맘 속 1위. 작가의 필력의 차이인지 주제에 대한 공감 포인트의 차이인지 아직은 애매하지만 아무튼 시리즈 나의 원픽! 읽는 내내 나의 산들이 떠오르고 작가의 기쁨과 답답함, 후련함을 함께 느꼈다. 

 사실 어떻게든 가고 싶었다. 인생의 결정적인 사건은 한계를 넘을 때, 한계를 넘고자 무리를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지 않던가. 모두 나만큼, 나보다 힘들 것이다. 해발 4천 미터 가까운 산등성이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욱이 언제 다시 여기에 올 수 있을까. 몽블랑에 온다 한들 정상에 오를 기회는 또 과연 나에게 있을까.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시간은 또 얼마나 길었던가. 욕심과 미련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돌아서야 했다. 나만의 원정이 아닌 모두의 원정이었기 때문이다. ... 먼저 내려서는 마음은 착잡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수긍할 수 있었다. 사실 아쉬움보다 얼른 마을로 내려가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pp.56-57

몽블랑 원정 대원으로 산에 올랐던 작가의 에피소드. 산 이야기지만 읽는 내내 나는 몇해전에 있었던 관계가 재정립되던 일이 떠올랐다. 물론 산과 전혀 관련없는 사건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 일이 산을 오르게 했던 시발점이 된 사건이었으니. 참 고집스럽게 붙잡았다. 이제는 기억도 정확하지 않고 설명하려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아서 뭐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이 관계가 버거웠다. 

 산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두 시간이면 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봉우리였는데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어처구니없게도 낯선 마을로 떨어진 적도 있다. 반나적이면 도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대피소였는데 낮 시간을 다 보내고 석양이 지기까지 능선 위를 헤맨 적도 있다. '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할 수 없다'는 결말로 이어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산은 나를 낮췄다. ...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지만 내 예측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성취와 성공보다 더 멋지고 감동적인 좌절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pp.58-59

아마 인생의 마지막 세션에서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 이제는 어느 모임을 가더라도 최고령(?)층에 속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겨우 받아들이고 있는 중) 꽤 긴 시간동안 (용케 아직도 버티고 있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난 성장기의 생명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시간의 힘이다. 할 수 있다는 전제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든 것을 하는 것이지 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더라. 내가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순간들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산을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아니요라고 대답하지만 한 마디 덧붙이기는 한다. 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아요. 배경으로 보이던 산이 주인공이 된 첫 산은 인왕산이었다. 스승의 날 기념(?)으로 별생각없이 가서 등산로조차 확인도 안하고 가서 이상한(?) 길(덕분에 등산객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는)로 힘들게 올라갔었다. 그 날 이후 주말이면 산을 갔다. 나는 산에서 지독한 길치였다. 정말 꼼꼼하게 확인을 하고 가도 길을 잃어 돌고 돌았다. 정말 내 눈에는 길처럼 보이는데... 일행이 누구든 다들 놀란다. 어떻게 그렇게 길이 아닌 곳이 길처럼 보이느냐고... 위험한 눈을 가진 덕분에 몇차례 엄청난 위기들을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그 날의 경험들이 발목을 붙잡지 않는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더욱 조심하고 준비를 많이하게 되었다. 

언젠가 다시 샤모니에 오게 된다면, 그때의 내가 저들처럼 힘차게 달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몽블랑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는데 흥미롭게도 그 지점에서 새로운 세계에 맞닥뜨렸다. 어쩌면 몽블랑 정상에 올랐다면 기쁨에 취해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세계였다.  p.62
산을 달릴 때 중요한 건 속도만이 아니다. 시작한 곳에서 끝까지 얼마나 지치지 않고 달렸는지도 중요하다. 당장이라도 이 질주를 멈추고 싶다. 중력을 거슬러 산을 달리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멈출 수 없다. ... 힘들고 지겹고 그만하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한테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점.  p.83

나한테는 좋은 것을 찾는 여정이 재밌지만은 않다. 나보다 훨 어린 나이에 나한테만 좋은 것을 찾은 작가님 부럽습니다.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라고 말한 앨버트 머메리.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는 머메리즘이란 등정주의를 가리키는 알피니즘이 아니라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오르는 것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를 뜻한다. 그는 산행의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했다.  pp.91-92
어떤 방법을 택하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정주의가 아닌 매순간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등반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등로주의. 어느새 산악인들은 탐험이나 모험 너머의 가치와 윤리를 향했다. 최소한의 등정 인원, 장비, 식량으로 새롭게, 다르게, 가볍게 그리고 자연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 관심 분야도 차츰 넓어졌다. 산에 대해, 산에 오르는 방식에 대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산이 궁금해졌다.  p.101
정상을 향한 마음만으로는 산에 오를 수 없다. 그렇게 절박하게 오른 산에서 내려와야만 우리는 다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경험한 산의 시간을 세상에 전하며 무채색의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또렷한 희망과 용기를 건넬 수 있다. 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삶을 말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산행은 'From Home To Home'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늘 산과 함께할 수 있는 삶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이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삶이 아닐까.  p.105
아무 말 없는 산을 혼자서 걷다 보면 마음 저 아래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미뤄놓은 생각, 답 없는 생각, 잊어야만 하는 생각, 결단을 기다리고 있는 생각, 그 밖에 또 수많은 생각... 그래서 산에서 답을 찾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산에서 얻은 어떤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서 그대로 덮어둔 경우도 많다. 뭉쳐 있던 생각을 꺼내고 펼치는 것만으로 시원하고 후련한 감정이 든다면 그날의 산행은 성공이라 여긴다. 내 안의 나를 만난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니까.  p.112

자신만의 것을 갖게 되는 과정. 대상이 무엇이든 그 과정은 비슷한 것 같다. 나도 나만의 산을 갖게 되는 과정에 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생기는 순간. 내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싶네. 내 위치가 어디든 중요한 것은 오래 도록 산을 오르고 싶다. 혼자서 오르는 산도. 함께 오르는 산도. 힘들다. 하지만 개운하다. 힘들지 않은 일은 없는데 개운한 일은 매우 드물더라... 난 등산이 좋아지고 있다. 

아무튼, 하루키(2)

하루키를 좋아하나? 지금도? 아무튼 시리즈를 주욱 살펴보다가 처음 눈길이 갔던 책이 하루키였지만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나의 하루키는 첫 만남이 그닥이었다. 대학때 허세 가득하던 동기 남학생의 입에서 나오는 하루키 책의 문장들은 그의 책이 궁금하면서도 절대 보고싶지 않게 만들었다. 문장 자체의 영향인지 그 문장을 내뱉던 녀석의 영향인지 알수없지만... 입만 열면 하루키 타령을 하던 녀석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어 어느 날, 큰 맘 먹고 도서관으로(이떄는 책은 늘 사서 읽던 때였으니 하루키에 대한 첫 인상이 얼마나 별로였으면)가서 하루키의 책을 빌릴 수 있는 만큼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나는 하루키의 작품 중에 좋아하는 작품이 몇 개 되지 않는다.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거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멋진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자체 복제같다는 생각과 이야기를 하다만다싶은 작품들이 있어서... 실망하고 돌아서면 또 기가막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시 역시 하루키였군하는 마음은 그 다음 작품에서 앗아가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구성에 있다. 작가가 좋아하는 하루키의 작품들로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유머가 있다. 각 챕터마다 묘하게 다른 문체가 있는데 읽는 내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의도일까?
이 책에서 가장 좋은 챕터는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이다. 작가의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장을 읽으며 나는 교실에서 펑펑 울었다. 언젠가 민수와 연수 중 먼저 떠나는 녀석이 있을텐데... 내가 남겨진 녀석이 느끼게 될 상실감을 채워주거나 위로해줄 수 없을텐데... 작가의 담담한 목소리에 내 슬픔을 더욱 커졌다. 

 이 상황이 좀 웃겨서 K와 다른 절친들이 함께 있는 카톡 대화방에 "나 지금 노브라로 나왔네. 그냥 오이처럼 침착하게 이대로 갈까?"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ㅋㅋㅋㅋㅋㅋ"로 점철된 말풍선들 끝에서 K가 말했다. "하루키적 모먼트네."
 나의 소울 시스터에게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p.129

하루키와 그가 소울 브라더라 불렀던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의 일화를 들려주며 자랑한 작가의 소울 시스터 K.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없는 순간을 보여주었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