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다른 낱말인데 비슷한 의미를 나타내서 그런지 꼭 짝처럼 붙여서 사용하게 되더라. 의미가 다를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뭘 찾아보거나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완전 타인에게는 잘 안 느끼는 감정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감정인데 시기심이나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좀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부분이라서)
그럼에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저런 감정들을 느낄 때, 나름의 구분 기준이 있더라.
부러움을 느끼는 상대가 잘 안 되길 바라는 마음이 따라올 때 시기심이라고 느끼고, 그 상대의 부러운 그 무엇에 대해(나도 갖고 싶은데 나한테는 없는 것이어서 그런데 나한테 없는 것이니 그게 없어지는 것은 싫으니까 상대가 잘 안 되거나 망하면 안 되는 거다) 질투심을 느낀다고 사용하고 있더라.
질투는 이야기하기 부끄럽지 않은데 시기심에 대해서는 내가 저런 의미로 사용하니 나와 많이 가까운 사람에게 저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더라. 내가 나쁜 사람같이 여겨져서 그랬던 것 같다.
시기보다는 질투가 더 많았던 것 같고, 언제 느꼈었나, 누구에게 이런 감정을 많이 느꼈었나 하나씩 찾아봤다. (시간이 남아도는가 별 짓을 다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스치듯 들은 저 두 단어가 계속 남아서)
그러다가
어제 누구에게도 늘 솔직한 친구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여서 일단 놀랐고, 왜 나한테 이야기 안 했었냐고 물을 수도 없는 것이 다 내가 들은 이야기였다. 단지 내게 했던 이야기들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아서 몇 년 만에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나라는 생각이 들고 힘들었을 그때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 도움이 못되어준 내가 좀 별로였다. 그리고 질투가 좀 있었다. 이게 좀 충격적이었다.(너무 자기중심적이구나라는 생각에 현타 두둥) 처음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질투를 느꼈는데,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어쩌면 친구를 질투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늘 이 생각이 이어지다가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소환했다.
...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구에 비하자면 친구나 공부나 학교 따위 너무도 시시했던 것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생각하며 걸으니 내 발은 당연하게도 구의 집으로 향했다. 구의 집 앞에 서서 녹슨 철문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집 안에선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기다릴까. 기다리다 만나면 뭐라 말할까. 잘 지냈냐고 물어볼까. 너 때문에 나는 만사가 시시해졌는데 너는 사는게 어떠냐고 물어볼까. 이 생각 저 생각을 엮으며 마음으로 구를 계속 불렀다. 하지만 집 안도 골목도 잠잠했다.
구는 내 생각을 하지 않는가보다.
나는 없고 너에게는 있는 것.
너무도 빛나보였던 그 것.
구의 존재
우리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너무 부러워서 너와 함께하면 나도 구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네가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와 현타와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네. 눈이 멀어서 제대로 보고 듣지도 않았던 나새끼 정말 때려주고 싶군.) 그떄의 내가 진정 불나방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