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내게는 없고... 네게는 있는...

쫌~ 2022. 4. 16. 22:24

 

좋아하지만 책장에 꽂아두고 싶지 않은 책. 어떤 날들에 읽고 싶어지면 빌려서 읽는 책. 3번째 빌려 읽는데 그동안 책이 꽤 지저분해졌더라. 이 책이 지저분해진 것을 견딜수없어 대출한 그 날 바로 주문했다. 작가님의 다른 책 2권과 함께. 너무 자주 만나지는 않기로...

  ...에 대해 자꾸 물었다. 나도 이모처럼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끈기 있게 대답을 해주던 이모는 결국 화를 냈고 나는 울었다. 울면서도 모르는 게 죄냐고 물었다.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이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들었다.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그건 영영 모르는 게 되잖아!
  ... 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하고 싶었다. 이모와 말하는 게 나의 유일한 놀이이자 사랑표현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세상에서 이모만을 사랑했다. 이모에게 내 사랑을 모두 쏟아부었고, 쏟아붓는 만큼 받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모는 나를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었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 그것이 이모의 사랑표현이었으니까.  pp.23-24

 이번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 

이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누군가가 담을 그런 눈빛으로 쳐다볼 수도 있다는 생각. 담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 담과 나를 놀리는 다른 놈들도 실은 죄다 담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p.43

구의 배에 귀를 대고 눈을 감은 채 어떤 소리든 들어보려 애썼다. 구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영영 그 소리 없이 살아야 하다니. 나는 다시 절망에 빠졌다. 구의 배를 베고 소리 없이 울다가 배가 볼록 들썩이는 것만 같아 눈을 떴다. 성기가 보였다. 손을 뻗어 그것을 어루만졌다. 밤새 만지고 빨고 이로 뜯어먹었다. p.49

구와 멀어진 후에도 늘 구를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하던 지난날을 생각하고, 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고, 구도 나를 이렇게 생각할까 궁금해하고, 생각은 돌고 돌아 구를 미워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그래서 구 아닌 다른 것, 다른 사람, 학교나 공부 따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 그것들이 재미없다는 생각 또한 하지 못했다. 구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옅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자,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구는 엄청나구나.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구에 비하자면 친구나 공부나 학교따위 너무도 시시했던 것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생각하며 걸으니 내 발은 당연하게도 구의 집으로 향했다. 구의 집 앞에 서서 녹슨 철문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집 안에선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기다릴까. 기다리다 만나면 뭐라 말할까. 잘 지냈냐고 물어볼까. 너 때문에 나는 만사가 시시해졌는데 너는 사는 게 어떠냐고 물어볼까. 이 생각 저 생각을 엮으며 마음으로 구를 계속 불렀다. 하지만 집 안도 골목도 잠잠했다. 
  구는 내 생각을 하지 않는가 보다.
어쩐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우리가 특별한 사이라면 내가 이렇게 구를 부르는데 구가 모를 리 없지 않나.... 조금 전에 내가 그러고 있었던 것처럼, 구가 우리 집 앞에서 그러고 있었다. pp.50-52

50쪽부터 이어지는 저 부분의 글을 가장 좋아했었다. 지금도 담의 구에 대한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는 생각에는 아니 내 마음을 잘 드러내 준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전만큼은 아니다. 나에게도 구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에게는 구가 없었던 것 같다. 저런 마음이 부러워서 마치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매일 밤 일기를 쓰듯 담이 집으로 갔다. 대문 앞에 서서 마음으로 담아 담아 불렀다. 골목에 발로 쓰는 나의 일기는 온통 담으로 채워졌다. 
  담이는 내 생각을 하지 않나.
  내 생각을 한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는 나를 모를 리 없는데. 
하지만 담은 몰랐다. 그 밤 중 단 한 번도 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다.
  담이는 내 생각을 하지 않는가보다. 내 생각을 하지 않고 자나보다. 잠이 잘 오는가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담이 잘 자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역시 나는 내 마음을 똑바로 알 수 없었다. 담이라면 말해줄 텐데. 자기 마음을 얘기하는 방법으로 내 마음을 말해줄 텐데. pp.53-54

상호작용이라 생각했다. 마음에도 생각에도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에 대한 마음을 담아두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너 역시 나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에 너를 담아두느라 담아두지 못한 나는 네 마음에 담겨있다고... 내 마음에는 나만 담아두는 것이다. 남을 담아두려고 있는 마음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담이 눈조차 바로 보지 못하면서 상상에서는 담이 살 어느 곳이든 맛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음 속 욕망과 금기의 주머니는 공평하게 커져갔다. 담을 보는 것도 괴로웠고, 보지 않는 것도 괴로웠다.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행여 더 가까워질까 겁이 났다. 담이 앞에서만큼은, 나는 나를 최고로 경계해야 했다. 
담은 나와 달랐다. 평온한 들판에 산책이라도 나온 듯 나를 만나는 것 같았다. 그 점이 서운하기도 다행스럽기도 했다. p.58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 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너를 만지고 싶어한다는 마음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우린 헤어질 수 없는 사이니까. 내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내린 확신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자연스럽게 깨달은 거였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어린 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 나쁜 짓도 좋은 짓도 부끄러운 짓도 같이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마음에는 비슷한 공간이 만들어졌고, 떨어져 있을 때에도 그것은 같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
얼마간은 그런 확신으로 구를 기다렸다.
...
얼마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나는 결국 무엇이 지나가길 기다리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구를 기다리는 시간인지, 구인지. pp. 83-85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도 (상호작용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혹시나) 촉수를 뻗어 더듬더듬 찾고 있는 것이니. 도망치게 만들 것이다. 

그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그 마음을 까먹으면 안 돼. 
걱정하는 마음?
응. 그게 있어야 세상에 흉한 짓 안 하고 산다.
내 마음엔 지금 그게 너무 많은데. 근데 그게 뒤죽박죽이야. 이모 걱정. 구 걱정. 내 걱정. 우리 모두의 미래 걱정. 온통 걱정뿐이야. 그래서 세상이 완전 흉하게 보여.
담아.
응.
니 걱정은 내가 한다.
.....
밥이나 먹자. 그놈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네.
..... 밥도 못 먹고 다닐까봐.
잘 먹어야지. 잘.
나도 구가 걱정되었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몸은 건강한지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다.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이 점점 커져서, 내가 내 상처를 겁내는 마음을 가려버렸다.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가려버리 듯.
pp. 95-96

 

갑자기 읽고 싶어져 지금 대출이 가능한 지 확인하고 대출 가능이라는 글자를 보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신경쓰지도 않았을텐데 전화벨 소리가 들렸고 다시 돌아가 전화를 받고 일을 처리하는데 이래저래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갔는데 서가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자리에 책이 없었다. 30분 전까지 대출가능이었는데... 라면 여기 저리를 기웃거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대에서 검색했더니. 대출중. 와... 30분만에... 누굴까? 누가 바로 직전에 대출한 것일까? 궁금했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구의 증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제 책장 한 곳을 차지하고 있으며 언제라도 들춰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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