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는 홍콩의 낡은 맨션 작은 방에서 은둔하던 인물이 죽고, 그 방 옷장 속에서 십여 개의 시체 조각들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출퇴근길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저 강렬한 이야기의 시작은 계속 들을지 말지 망설이게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극적인 소재는 더 참기가 어려워졌다는... 혹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딱 도입부만 지나가면 괜찮다. 거기서 포기했다면 후회했을 만큼 울림도 있고, 재미있다. 어설프지 않은 트릭과 설득력 있는 이유, 떡밥 회수와 마음의 울림까지...
단순 자살로 보이던 사건이 복잡한 추리극으로 바뀌게 되는데... "누가 범인일까?" 보다 “어떻게 한거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나오는 홍콩의 오래된 맨션, 낯익은 거리의 이름과 화려한 도시로만 기억되던 홍콩의 뒷골목 등은 현실감과 함께 이 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고립감을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투영하게 된다.
작가가 책의 첫 장에서 실제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니 지도에서 스트릿 뷰를 보며 책 속의 곡(보위)을 들어보라고 권했는데... 천재 작가!! 내가 알고 겪어 본 홍콩을 떠올리게 되자 더 이상 글의 내용이 이야기로 동떨어지지않고 살아 숨 쉬게 된다. 낯설지 않은 공간에 한 번쯤은 느껴 보았던 감정들이 더해져서 더욱 몰입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고독, 관계, 단절, 무관심과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어 예전으로 생활 모습으로 돌아간 듯 보였지만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이 더 확실해졌다. 함께 어울려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맞닿지 않는 관계.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기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균열. 그 틈으로 스며드는 고독감.
트릭이 기발하다. 무심결에 흘려버린 대화장면이 마지막 큰 퍼즐 조각이었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작은 단서들이 모이게 되는데 마지막에 그 단서들이 짜여지는 방법이 정교하고 새롭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수록 더 흥미로울 것이다. 장담!!
내가 찬호께이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추리소설이이지만 의미 있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 때문이다. 무거운 주제들이지만 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들에 공감도 되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어 좋다. 추리소설 자체로만 봐도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다. 형사 쉬유이, 용의자 목록에 있던 칸즈위안, 은둔자 셰바이천 등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건에 다양한 영향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된 독자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엮이면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있다. 도입부의 토막 시신에 대한 잔혹한 묘사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이 외면당하는 설정들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했다. 그리고, 범죄자를 처벌받게 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해도 용인될 수 있을까? 공권력이 무능(?)을 돕기(?) 위한 사적제재에 대한 찜찜함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문자 그대로 홀로 남겨진 칸즈바이가 걱정되었다. 심지어 목표하던 일까지 완수한 칸즈바이는 홀가분한 기분이었을까? 칸즈바이는 이야기 내내 외부 세계와 사건을 잇는 역할을 해왔는데, 결국 모든 걸 지켜본 채 홀로 남겨지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사건으로 인해 변해버린 그의 환경은 더 이상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무엇보다 그와 깊이 연결되어 그를 표류하지 않게 해 주었던 이들도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된다.
나는 칸즈바이가 더 글을 쓰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 되겠지만 사람들과 다시 연결되려 노력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쉬형사님의 부탁은 칸즈바이가 홀로 표류하지 않기를 바라며 건넨 선물이었고, 칸즈바이 역시 그 의미를 알았을 테니....
'들려주고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6. 4번째 여름인가? (같이 산 지 십 년) (3) | 2025.06.17 |
|---|---|
| 2025.5. 아날로그(그리다가,뭉클) (4) | 2025.05.29 |
| 2025.5. 배경의 중요성 (1차원이 되고 싶어) (0) | 2025.05.27 |
| 2025. 5. 가벼운 마음으로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2) | 2025.05.12 |
| 지어낸 이야기는 무엇일까? (무엇이든 속상한 이야기) (0) | 2025.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