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2025.5. 배경의 중요성 (1차원이 되고 싶어)

쫌~ 2025. 5. 27. 10:57

 성인이 되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이제 제법(?) 스스로를 돌보게 된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
 자기가 누구인지도 자기가 속한 곳이 어떤 곳인지도 혼란스러운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10대 시절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1인칭 시점의 이야기 진행과 간결한 표현은 주인공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다. 
 대구 수성구의 남자 고등학생. 공간적 배경을 기가 막히게 설정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생각, 행동에 대한 충분한 근거이다. 

 처음에는 2000년대 초반이라는 시간에서 느껴지는 정겨움으로 대구라는 공간적에서 느껴지는 친숙함으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대한 공감으로 가볍게 읽어나갔다. 그들의 고민의 무게도 그리 무겁지 않았다. 성장소설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다 어느 순간 서늘해졌다. 그 시절을 현재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이 모든 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어떤 몸부림들은 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말자. 

 

침묵과 비밀. 
그것은 모든 걸 안개 속에 밀어 넣어버리고 인간을 외롭게 만든다. 나는 윤도가 나를 통해 비밀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그래서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욕망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p.53

나는 'Let 다이'와 '뉴욕 뉴욕'을 읽으며 남성들의 사랑을 배웠고, '별빛 속에'와 '노말 시티'에서 SF를, 'X'와 '성전', '악마의 신부'에서 오컬트 문화를 흡수했다.   p.55

모든 처음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나는 우습게도 담배를  피우며 배웠다. 무늬는 그런 나를 보고 또 한번 웃었다.  p.68

윤도가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게, 고유한 취향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경하게 다가왔다. 윤도가 윤도만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내 시야 밖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일궈가고 있다는 게 싫었다. 그를 내 곁에 묶어두고,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런 비뚤어진 집착에 사로잡혀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연연하며 그에게 온통 묶여 있는 것은 정작 나였지만 말이다.   p.119

인생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좀더 쉽고 간단했다.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저 앞을 보며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십여 년 동안 끝없이 질주한 끝에 내가 다다른 곳은 결국 제자리였다.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p.131

어느새 그때의 일은 우리에게 일종의 외딴섬이 되었다. 명백히 우리 관계의 한중간에 놓여 있지만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려 하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  p.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