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쫌~ 2025. 3. 26. 09:44

 도서관 앞의 자목련이 피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다님의 관찰 일기가 떠올라서... 봄을 맞이하는 아니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3월의 책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2022년부터 매일 자연관찰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기록을 해보니 자연이 매일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봄은 생각보다 길었고, 여름은 매일 뜨겁지 않았다. 가을은 예상보다 일찍 징조를 보였고, 겨울은 늘 얼어있지 않았다. 

 특히 이 공원에서 제일 크던 자작나무도 밑동이 베어져 토막토막 잘려 있다. 대체 왜? 근린공원에 흰가루병이 도는 것 같던데 그래서인가? 아님 속이 썩어 있었나? 너무 커서? 뿌리가 위험해서?  p.45

 이 녀석도 살아 있는게 용하다 싶은 안쓰러운 형태다. 구상나무는 전체적으로 원뿔형으로 자라는데 위쪽을 싹뚝 잘랐다. 아마도 2층 주민의 시야에 구상나무가 거슬렸던 것 같다. 아랫부분도 먼지에 시달려 거의 회색이 되었고 부분적으로 부러져 있다. 도시에도 나무는 어디든 있지만 대접을 받는 나무는 흔치 않다. 하지만 나무는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 살아낸다.  p.51

 재작년에 이사 오고 나서 공원 전망대에서 처음 봤는데 '단비'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 누가 잃어버린 고양이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공원에 사는 길고양이인데 주민들이 이름도 붙여주고 돌봐준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고 애교가 많다.  p.89

 처음 본 장소에서 사람 걸음으로 10분 이상 떨어진 곳이다. 쪼그만 것들이 헤엄을 쳐서 자기 살 곳을 찾아왔다는 것이 너무 대견하고 귀였다. 셋 다 건강해 보이고 벌써 많이 컸다!  p.105

 고양이들이 따라갈까 따라가지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그 자리 그대로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었다. 카페 주인아저씨가 계속 밥을 주러 오는 모양인지 그릇은 사료로 가득 차 있다. 멧비둘기가 사료를 훔쳐 먹으러 왔지만 고양이는 멧비둘기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게 맞다.  p.127

 불광천 집오리 삼남매가 걱정이다. ... 인간인 내 입장에서야 예쁜 오리들을 가까이 봐서 좋고 애들이 굶어 죽을 일이 없어 안심이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야생에 머물러야 할 아이들이 지나치게 사람 손을 타게 될까 걱정이다. 그러지 않아도 얼마 전 새끼 오리들이 동물 학대자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다. 미친 놈들은 이 주변에도 있을지 모른다. 오리가 보여도 걱정이라니. 마음이 말랑말랑했다가도 금방 씁쓸해졌다.  p.135

 이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고 바깥으로 내보내줄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p.151

 산책로 가까이에서 험한 일 당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귀찮은 사람은 피하기도 해서 다행이다. 삼남매는 모든 행동을 같이 한다. 청둥오리들처럼 강바닥에 머리를 바고 물이끼를 먹고, 다 똑같아 보이는 이끼도 더 맛있는 것이 있는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엄치며 서로 꽥꽥거린다.  p.169

 다이앤 애커먼의 '마음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었는데, "경이는 아주 부피가 큰 감정이다. 경이가 가슴을 가득 채우면 다른 것이 들어설 자리가 남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보고 공감했다.  p.193

 또 사람들한테 뭐 얻어먹고 있는 것 같은데 저래도 되나... 야생동물한테 먹이 주기 금지 아니었나? 스스로 살아가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구청에 민원을 넣어야 하나? 별생각을 다하게 된다. 새끼 때부터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내 자식같이 걱정이 된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집오리는 이미 사람의 손을 탄 가축이라 스스로 먹이를 찾기보다 인간에게 의지하는 성향이 강한 모양이다. 야생에서 살아가지만 야생동물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나 말고도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p.203

 원래 비둘기는 더럽고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서 발을 굴러 쫓아내곤 했었다. 그런데 자연 관찰 일기를 쓰고 나서부터는 비둘기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됐다. 자세히 보니 비둘기도 예쁘다.  p.219

내가 보고 듣는 것이 나를 만든다. 나의 관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지금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에 나는 생태계는 교과서에서만 경험했다. 지구 생태계의 일부인 인간이 내 삶의 전부였다. 이제서야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가? 이제라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작은 생명들을 볼 수 있어서.
작가님이 불광천의 집오리 삼남매를 걱정하듯 내게도 마음쓰이는 동네 고양이들이 있다. 불광천 집오리들은 꽤 사랑받지만 우리 동네 고양이들의 처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돌봐주시는 분들이 있어 중성화도 마친 녀석들인데 누군가의 혐오가 녀석들의 일상을 넘어서 생존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겨울집, 밥자리 훼손. 지극정성으로 매일 매일 아이들의 밥자리를 없앤다. 사료를 치우고 물을 버리며 그릇을 가져간다. 이제 더 나아가 고양이들이 오는 공간을 더럽히고 있다.
싫어할 수는 있다. 불편하고 꺼려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심지어 그 행위가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 인간이기에 혐오에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가. 그에게도 보이기를... 그를 둘러싼 작은 생명들이... 그리고 자신의 혐오에 수치를 느끼게 되길.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가 같이 찾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