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하기 싫은 추운 계절의 끝자락이 다가오자 근질근질해진 몸과 마음에 발 맞추어 읽은 전국 축제 자랑.
각종 K-스러움을 엿보게 되는 축제의 현장. 이야기에만 반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꽤 깊은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제대로 영업 당한 강릉 단오제! 꼭 단오장에 가서 감자전과 단오주를 먹어야지!! 축제 기획자들은 모두가 즐거운 축제를 위하여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는 소수였던 사람들이 있다.
역시 인간에게는 '시각화'의 쾌감 또는 꽤나 강력하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모든 축제를 움직이는 커다란 동력일 것이다.) p.16
하지만 구림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이 모든게 무색할 만큼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벚꽃이 탐스럽고 흐드러지게 핀 길이라니. 하늘이 벚꽃들로 가득 차 벚꽃으로 만든 돔 지붕 아래를 지나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월출산을 두르고 100리 남짓 이어지는 '영암 100리 벚꽃길'을 따라 걸으며 향에 취하고 흥에 젖은 채 4월의 축제장에 도착했다. p.37
지역 축제의 즐거움 중 하나는 알지만(교과서와 미디어에서 선별하여 보여준 것들로만 알고 있는)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펼쳐지는 어쩐지 익숙한 행사 내용들이 아닐까?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익숙한 음식, 비슷 비슷한 행사장, 행사 내용들
그래, 미리 해버리는 수가 있었지. 취소나 연기만 생각했던 우리가 멍청했다. 그러게. 왜 주최 측이 날씨에 수동적으로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선빵'을 날릴 수도 있는 건데! p.49
정말 대단한 퍼포먼스였다. '퍼포먼스'가 말 그대로 퍼포먼스였다니. 사람의 추정 심리를 이용해서 교묘하게 서술 트릭을 쓰는 애거서 크리스티적이면서, 앵글 조작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만든 데이비드 코퍼필드적이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괄호로 다 묶어 버리고 보이는 것으로만 현실을 느껴야 완성된다는 점에서 현상학적이기까지 했다. ... 속이야 어떻든 그럴싸하게 보이면 그만이라는 이 요식의 극치인 K-퍼포먼스에 우리는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아까 선착장에서 농악대와 장정들은 대체 여기까지 왜 굳이 쫓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외지인을 보며 얼마나 의아하고 민망했을까를 생각하니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먹기 시작한 홍어와 막거리는 왜 이렇게까지 맛있는지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pp.59-60
그럭저럭 규모 있는 지역 축제 중 2017년 기준 흑자를 낸 축제는 네 개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이 축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불황일수록 그나마 유일하게 노력해 볼 구석은 관광 마케팅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p.69
손님들을 초대했지만 호스트의 편의대로 운영되는 파티. 보여주던 축제에서 다함께 즐기는 축제를 지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손님은 손님? 알려만 주세요. 함께 만들어가자고요!
하지만 중대한 난점이 있었다. 널 보러 오긴 했는데 정확히 너의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 프로그램은 풍부했다. 문제는 그 프로그램들이 총체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좀체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올해 축제에 붙인 제목만봐도 "백 년의 함성, 아리랑의 감동으로!"인데 약간 '어쩌라고'의 느낌이 든다. 우리가 방문했던 2019년이 3.1운동, 임시 정부 수립, 의열단 창단 '100주년'이라는 걸 감안하고 봐도 말이다. 홈페이지와 리플릿에 빼곡하게 적힌 설명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텅 빈 것 같았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추상적인'게 가능하다니...... p.95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저 멀리 파란 레이저를 받아 빛나는 영남루를 배경으로 빛깔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배 한 척이 호젓이 강을 지나가는 장면에 넋 놓고 있는 바람에 깜빡 속을 뻔했다만, 잘 뜯어보면 그저 희망, 용서, 위로, 사랑처럼 '있어 보이는'마들을 때려 넣었을 뿐인 실로 '정성스러운 아무 말' 아닌가! 산 자와 죽은 자가 희망으로 만나는 게 뭔데? 용서와 위로가 사랑으로 넘친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p.98
세부 내용은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을 총동원한 후 개별 캐릭터의 개성으로 때우고, 그 와중에 홀로그램, LED, 드론 같은 IT 기술로 때깔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뽑는, 박태하가 요약한 '무맥락-탈미학-테크니컬-키치'라는 한국의 독보적 정체성이 만개한 흥미진진한 개막식이었다. pp.103-104
예쁘게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추상적인이지만 그냥 빛 좋은 개살구? 이건 또 너무 심한가? 뷔페도 메인으로 미는 음식들이 있다고요!
나의 마지막 지역 축제는 화천 산천어 축제(사람들의 유희에 초점을 맞춰 산천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집단 살상하는)였다. 연어 축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챕터에서 나는 산천어 축제에서의 기분을 떠올렸다. 너무나 유명한 그 축제에 왜 다시는 참가하고 싶지 않은지... 주변에 권하고 싶지 않은지... 내 아이를 데리고 가고 싶은 축제가 아닌지... 과거의 언젠가 어떤 곳에서는 경기장에 사람들과 사자를 함께 풀어놓거나 검투사라는 명칭까지 부여하며 진검으로 죽을때까지 싸우게 하는 것을 즐겼었다. 우리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그들의 유희를 옹호하지도 않는다. 생명에 대한 윤리 의식은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것일까? 인간의 유희가 생명보다 앞서는 권리인가? 오늘은 연약한 동물이지만 내일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계층이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누군가의 필사적인 삶의 의지를, 그리고 그 의지가 너무나도 간단히 꺾여 버리는 순간을 봐 버리고 나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같이 죽는 것 같다. 더는 행사를 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돌아나오는 길, 그물망 한 귀퉁이에는 어떻게 이곳에 섞여 들었는지 모를 새끼 연어들이 죽은 채 둥둥 떠 있었고, 여기저기 살갗이 벗겨진 중간 크기 연어들이 그물 틈새와 바위에 몸을 뉘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p.217
그야말로 흥행 보증 수표라 할 이 행사가 마지막 날에는 의외로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는데, 그 한 번이 '황금 연어를 잡아라!'라는 이름의 스페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연어 몸속에 1등부터 5등까지 기록된 칩을 심어 놓고 1등 연어를 잡은 사람에게 1000만 원을 비롯해 총상금 1500만 원을 수여하는 이 빅 이벤트에 대한 호응도 당연히 뜨겁다. 마이크로 칩에 1000만 원이라니. 생태적 철학이 부재한 마구잡이식 맨손 잡기에, 그런 와중에도 '고퀄'인 기술력에, (몸속 칩을 읽어 내기 위해 축제장에 무려 감식대까지 설치한다.) 로또식 한탕주의까지 뒤섞인 너무나도 K적인 이 행사에는 선착순 3000명을 모집한다. p.219
'체험'이라는, 교육적이면서 적당히 모험적인 느낌까지 섞여 있어 어디에 갖다 붙여도 그럴싸해지는 마법의 단어로 포장한들 결국에는 대량 살상 해위의 일부가 되는 체험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일 리도 없다. 최근 몇 년 새 동물원이 "자연에서 동물을 뚝 떼어 도시로 데려와 전시하는 가혹한 공간"이자 "가장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동물을 대면하는 곳"이라는 비판적 공감대가 조금씩 넓어져 가고 있는데(모TV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박사가 쓴 표현을 빌렸다.) 축제 속 맨손 잡기는 그걸 훌쩍 뛰어넘는다. 대면하자마자 죽이는 거니까. 아니, 죽이려고 대면하는 거니까. 동물을 대상화하는,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방위적으로 송출하는 이 행사를 통해 아이들은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펄떡펄떡 뛰는 생명을 제 손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앗아 가는 전능의 '손맛'까지 알게 된다. (물론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게 하는 보호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만 이는 극히 소수이며, 물고기가 겪는 고통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물을 나끼는 사람이 긴간도 아낀다."라는 말을 믿지 않지만(히틀러만 봐도 그렇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하다."라는 칸트의 말은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라는 ㅁ라로 맨손 잡기 같은 체험을 요약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인간의 생면vs. 동물의 생명'이라는 화두까지는 어림도 없고, '인간의 재미 vs. 동물의 생명'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간의 재미'를 선택하는 그 해맑은 가학성이 별생각 없이 돼지를 번지점프대에 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번지점프당하는 돼지를 보는 것도 특혈함 '체험'이고 즐거운 유희였을 것이다. pp.224-225
연어 축제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거였다. 연어가 거센 물살에 맞서다가 온 힘을 다해 도약하는 순간 같은 것. 그 순간 우리 마음에 넘실대던 따뜻한 바닷물 위 윤슬 같은 감정. 도망치는 헤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헤엄. 지켜보는 사람들이 어느샌가 연어와 한마음이 되어 연어의 전진을 응원하고, 그 응원이 조금씩 번져서 연어의 존재를 응원하게 되는 경험. 아이들이 체험해야 할 좋은 교육이란 연어를 쫓을 때의 스릴도, 연어를 만졌을 때의 촉감도, 연어를 맨손으로 잡아 구워 먹는 재미도 아니고 눈앞에 있는 이 생명이 얼마나 대단한 여정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경이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 나아가 아무리 먹기 위해 기르는 생물이라고 해도 어떻게 하면 그 생물에게 가해지는 통증과 고통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아닐까. p227
모두가 즐거운 순간. 축제. 우리의 축제는 변해야 한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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