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울컥하는 순간이 꽤 있었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건들과 책을 덮는 순간까지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
지금 이 땅에서 발 붙이고 살아가는 나를 슬프게 하였다.
주인공 김지영씨는 특별하지 않다. 김지영씨가 살아가는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트위터의 트윗들을 읽고 있는 듯한... 난 끊임없이 리트윗하고 있었다는....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면서는 누군가의 블로그를 읽어내려가는 듯 했는데...)
우리 세계여서 욕 나오게 슬프다.
2015년 가을
딸도 있고, 그 딸이 얼마나 고생스럽게 명절을 보내는지 지켜보고 있으면서... 며느리에게 소리를 지른다. 내 식구와 남의 식구에 대한 온도차보다도 집에서 가장 큰 무게를 갖고 있는 사람의 대응 태도가 거슬렸다. 무안했다면 무안하다고 하고, 미안했다면 미안함을 표현해야지 대뜸 소리를 지르다니...
1982년 - 1994년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어머니는 터울이 져서 그런지 누나들이 샘도 없고, 동생을 잘 돌봐 준다고 항상 칭찬했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정말 샘을 낼 수도 없었다. (p.28)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p.32)
딸만 둘이 있는 집 맏이로 컸다. 언젠가 아빠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냥 나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아빠 역시 맏이로 크셨다. 어려서 느낀 아들이 없음에 대한 아빠의 서운함은 괜히 내가 미안한 존재가 되게 했으며, 아들 못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가정적이로 권위적이지 않으려고 부단하게 애쓰는 것 같았던 아빠였음에도... 그 아빠에게 엄청난 기대와 사랑을 받고 자랐음에도... 난 아들이 아니어서 지금까지도 씁쓸함이 있다.
아빠가 가진 맏이의 무게는 어린 내가 볼 적에도 가볍지 않은 것이었다. 꼴에 같은 맏이라고 엄마에게 아빠의 짐을 이해하라고 불쌍하다는 말을 지껄였으니... 실은 엄마가 아빠와 그 짐을 나눠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엄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 정말 아빠를 사랑하신 것인데 아빠는 모르시겠지.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 아이의 괴롭힘 때문에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껏 당해 온 것도 억울한데, 친구를 오해하는 나쁜 아이가 되기까지 했다. 김지영 씨는 고개를 저었다. (p.42)
선생님의 잘못이었다고 미안하다고 바로 이야기하는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 놀란 것은 그런 선생님조차도 '네가 좋아서 그런 것이니. 네가 이해해주렴.'이라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어떤 의도로 저렇게 이야기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자신의 목소리 내는 것이 특별한 것이던 김지영 씨는 단호하게 말한다. "싫어요."라고...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준 선생님 앞이어서 가능했을 것이고, 김지영 씨가 억울하게 혼나고 있을 때 용기내어 사실을 말해 준 친구의 목소리를 들은 후여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어떤 지점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집어 지적할 수는 없지만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말해 버릇하지 않아서인지 푸념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p.44)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p.46)
미화부장은 여학생이, 체육부장은 남학생이 했다. 선생님이 시키든 아이들이 지원하든 꼭 그랬다. (p.47)
여자 애들이라고 싫어서 안 하는 줄 아세요? 치마에 스타킹에 구두까지 신겨 놓으니까 불편해서 못하는 거라고요. 저도 국민학교 때는 쉬는 시간마다 말뚝박기하고 사방치기 하고 고무줄놀이 하고 그랬어요. (p.55)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 (p.65)
아이들에게 양성평등 교육을 시키고 심지어 직원의 성비가 여성이 더 많은 학교에서도 여학생에게 불합리한 제도들이 여전하다.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양성평등 교육을 시키지만... 학교 전반에 걸친 대부분이 양성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잠재적 교육과정에서 여학생들은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여자는 다행이라며 대뜸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했다.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pp.68-69)
아버지는 화가 나셨겠지. 좀 더 일찍 마중나가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그 탓으로 아이를 야단친거겠지. 너무 미안해서... 미안함의 크기만큼 아이를 탓했으리라. 자신을 탓하기에는 너무 괴로우니... 하지만 성숙한 인간이라면, 사회화가 된 인간이라면 자기 보다 약한 사람에게, 그래서 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에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충분히 각오하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희생에 대한 후회와 원망은 깊고 길었고, 결국 그 응어리가 가족 관계를 망쳤다. (p.74)
2001년 - 2011년
생각할 기회가 없고, 의견이 없고, 늘 말도 없어서 스스로를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던 김지영 씨는 자신이 의외로 사람들을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고, 남 앞에 드러나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86)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p.93)
그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것은 학과장의 대답이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해. 지금도 봐, 학생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줄 알아?" 어쩌라고? 부족하면 부족해서 안 되고, 잘나면 잘나서 안 되고, 그 가운데면 또 어중간해서 안 된다고 하려나? (p.97)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태워 준다고? 김지영 씨는 순간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야 제대로 이해했다.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p.100-101)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대표의 판단이다. 그동안 김지영 씨와 강혜수 씨에게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맡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두 사람을 더 신뢰해서가 아니라, 오래 남아 할 일이 많은 남자들에게 굳이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 (p.123)
저 택시 기사는 살면서 한번도 자신이 내뱉는 말에 대한 검열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사회화가 된 성인임에도 혼자 속으로 생각하거나 자기 친한 이들과 나누어야 될 말을 거리낌없이 던지는 것이다. 택시 기사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 모임을 만들면 전국에 지부를 하나씩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2012년 - 2015년
혼인신고 할 때 부부가 합의했다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p.312)
주어진 권리와 헤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p.139)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p.144)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p.145)
"그런데 조사받은 남자 직원들이 우리한테 너무했대. 자기들이 몰카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나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좀 본 거 가지고 성범죄자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사진 유포했잖아. 범죄를 방조했잖아. 근데 그게 잘못인 줄도 몰라. 완전히 개념이 없더라니까." (p.155)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건. 그런 짓을 용서해 줄 이유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대표님 생각부터 고치세요..."...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p.156)
김지영 씨의 남편은 현실 세계의 내 주변의 어느 남편보다 다정하게 말해준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자 애쓰는 남편같다. 몇 해전의 나는 그가 꽤 괜찮다고 여겼을것이다. 지금은... 싫다. 움직임이 필요하다. 집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지영 씨에게 자신의 결심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자신의 부모님 앞에서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가 행동했다면... 김지영 씨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을 그 다음부터 실천했다면... 김지영 씨의 이야기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시아버지는 없지 않았을까?
2016년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p.170)
"환자를 만나서, 눈을 보고, 얘기를 들어봐야 진단이 나오는 거지. 하루에 10분도 애랑 있지 않는 당신이 뭘 알아? 그 10분도 애는 안 보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당신이 뭘 알아? 자는 모습만 봐도 알아? 숨 쉬는 소리만 들어도 알아? 신 내렸니? 의사 아니고 무당이었어?" (p.171)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p.175)
가장 충격적인 챕터였다. 김지영 씨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의 저 마지막 한 마디는. 이 의사나 김지영 씨의 남편이나 딱 거기까지다. 자신의 머릿 속에서 특별한 경험의 한 부분으로만 여성을 다룬다. 깨달았다면 행동이 달라져야겠지. 자신이 얼마나 넓고 깊은 사람인지 자위하기 위한 성찰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