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총 14강으로 구성된 그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20대에 여행으로 갔던 유럽에서 미술관을 구경(말 그대로 구경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그림을 실물로 본 것으로 만족했던)하다 우연히 참여하게 된 가이드 투어는 매우 재미있었다. 언어의 장벽 따위 가뿐하게 넘지 못하는 주제였지만 그림을 구경하는 것에서 그림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되었다. 요즘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문학 작품외에 다른 종류의 책들도 읽어보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여러 책들 가운데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목차때문이었다. 뭉크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그림책이라니(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그의 작품 분위기는 어떤 이야기의 시작을 담당하기에는 너무 어둡다?)... 그리고 이야기의 절반은 현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기존의 화풍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래서일까? 이름은 들어봤는데 대표작조차 선뜻 떠오르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며 가장 많이 접하게 되지만 진입 장벽이 (개인적으로) 높았던 현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더 이상 실내 인테리어나 책 읽는 사람들, 뜨개질하는 여성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그림의 주제는 숨 쉬고 느끼며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p.22(뭉크가 일기장에 쓴 내용)
낭만주의는 이처럼 정치적 수단에 예술이 이용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인간 본연의 감정에 집중하고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며 작품이 예술 그 자체로서 존재하도록 했죠. 즉 자유 국가에서 개인의 낭만적 이상을 그리려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혁명 후의 시대적 상황과 권위주의, 왕권 타파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없었더라면 미술작품은 꽤 오랫동안 고전 문화에 집착하고 왕권을 미화하며 역사적 왜곡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p.62(이것이 낭만주의의 낭만이 아닐까?)
소셜 리얼리티, 즉 사회적 현실을 고발하듯 사실적으로 담아낸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죠. 작가 개인의 심리를 주관적으로 표현하고, 자아의 해방과 상상의 세계를 그리며 인간의 감정에 치중했던 낭만주의와는 상반됩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에서 돌아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고자 했던 시대상의 다큐멘터리, 사실주의의 시대가 낭만주의를 밀어내고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p.63(새로운 물결로 등장하며 19세기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낭만주의 역시 어느 순간 헌 물결이 된다. 사실주의의 등장)
"당신이 당신의 행동과 예술로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없다면, 소수를 만족시켜야 한다. 다수를 만족시키는 것은 나쁜 것이다." p.75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누다 베리타스' 에 적힌 문구. 이 작품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쨌거나 당시 다빈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 개의 작품을 가지고 떠났다고 하는데요. 바로<모나리자>, <세례 요한>, <성 안나와 성모자>입니다. p.113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주문자 역시 이탈리아 사람인데 모나리자는 왜 프랑스 파리에 있을까?)
비밀은 '반타블랙'에 있습니다. 이 색은 애니시 커푸어가 2016년 2월 예술적 용도로는 전 셰게에서 자신만 쓸 수 있는 독점 사용권을 구매했다고 밝힌,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검은색'입니다. p.136 (그의 이기적인 이러한 행동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빈정거림의 영감을 주었다. 예술적으로 우아하게 까기)
자코메티는 자기 작품이 기성품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가 지녔던 예술 철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조각은 오브제가 아니다. 물음을 던지는 것이며, 질문하는 것이며, 대답하는 것이다. 조각은 끝내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완벽한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p.155
베이컨은 삽화처럼 이야기를 묘사하는 회화 방식을 회피하며, '인간의 고통'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역사적 이미지에서 형태만 빼내어 자신만의 연출을 더했습니다. 보는 사람이 고통의 감정, 사람의 운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했죠. p.168
현대 미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근대 미술은 프랑스의 아카데미 전통(국가가 미술 작품 제작에 관여하는)을 깨부수려고 했던 에두아르 마네가 <풀밭 위의 식사>와 <올랭피아>를 그리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술계의 오랜 전통을 거부한 마네의 이러한 행동은 모더니즘(근대미술)의 시작을 알렸다고 한다.
그는 평생 미술비평가들에게 형편없는 화가라는 조롱을 받았지만, 아티스트로서 자유로운 창작을 이루고자 꿋꿋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p.186
마네의 한 우물 파기는 점차 많은 화가들의 동참으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등장하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자포니즘, 야수파의 등장, 추상화의 등장, 실험 미술에 속하는 아방가르드 (미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미술은 계속해서 변신을 거듭했다.
다시 말해 현대미술 감상에 있어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취향에 맞게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르네상스 미술이나 바로크, 고전주의 등의 도상 해석이나 알레고리를 외우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감상의 자유를 얻었다고 말이죠. p.191
작가가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어느 틀에 가두고 싶지 않을 때는 특히 거친 마찰이 생겼습니다. 미술계의 흐름이 현실을 똑같이 그려내거나 조각으로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작가가 작품에 의도적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자고로 예술작품이라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뜻이 전달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죠. p.203
피카소는 작품이 스스로 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설명이 어디에 좋은 것인가? 화가는 하나의 언어만 가진다. p.205
현대미술 아티스트인 해나 레비는 "나는 감상자가 내 작품을 봣을 때 어떤 감정을 일으키도록 만들 것인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 내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 또한 좋다. 나는 누군가의 경험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너무 몰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p.209
쿠사마는 여러모로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어냈고, 존재 자체로 혁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주류 예술계에서는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동양에서 온 작은 여자라며 잠시 이야깃거리만 되었을 뿐이었지요. 심지어 예술적 아이디어를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빼앗기기까지 했지요. 쿠사마는 자신의 작품을 베껴간 아티스트들이 자신보다 주목받는 상황에 좌절하고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잊힌 작가였으나 그는 1989년 뉴욕 인터내셔널 현대미술 센터에서의 회고전과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그리고 2012년 휘트니 미술관 회고전을 거치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명작은 결국 주목받게 되는 법이네요. pp.225-226
매 순간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 전통적인 관습과 규범에 안주하지 않고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만들면서 다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낸다.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답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아니 나 역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였다고 그 어느 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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