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가느다란 실이라도 잡아당겨 확실하게 잇는 법이다. (p.10)
잡아당기는 것은 나의 의지. 인간의 의지가 있어야 마무리되는 것이 운명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 조르고 또 조르고... 끝까지 우겨보고 싶어서
내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의 등을 보았다. 그의 스웨터와 가방 같은 것들이 되어 늘 따라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했던 시절. 그럴 수 있다면 이렇게 괴롭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같이 있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간절했다... 차라리 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처절한 갈망은 채워지는 일이 없었다. (p.18)
사소한 몸짓도 살짝 닿은 손도, 모든 게 아프고 고통스러울 만큼 좋아졌다... 올려다보았던 동그란 달을 지금도 기억한다. (p.19-20)
기억한다. 나도 기억하다가 더 쓸쓸할까? 나만 기억한다가 더 쓸쓸할까?
그와 연애를 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계속 만날 사람,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의논하고, 같이 외국을 여행하거나 산에 다니면서 친하게 지낼 사람이라고만 믿엇다... 그가 없는 인생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조그만 소녀가 된 것처럼 불안했다. (p.22-23)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잠시뿐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정도로 서글프다. 최대한 그런 날을 생각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기간이 한정돼 있는 연애가 애달픈 것처럼... (p.25)
자신의 경험이 이렇게 파문처럼 퍼져 나가는 것은 멋진 무늬를 보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어떤 행동을 하면 그것이 나중의 무엇과 연결된다. (p.32)
최고의 보물과 최악의 슬픔을 두 다 받는 기분이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조정하고, 화가 나도 잠시 참고, 함께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가려는 힘. (p.41)
무슨 일이 있어도 누군가가 지켜 준다는 그 감촉에 안심하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수없이 반복된 감정이리라. (p.46)
같이 살다 보면 상대의 몸이 자기 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되는데 (p.60)
이도저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을 이 세상살이의 한 귀퉁이에 참가하게 해 주었으니... 죽는다는 것은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것. 꿈에서 만나 그 기척을 느낄 수 있어도, 그건 위로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없는, 그런 매일을 살기 위해 떨쳐버리는 것. (p.63)
어디에 있어도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면 무언가가 확실하게 이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사토루가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라고. (p.76)
조금 전과 똑같은 하늘인데, 이치로와 얘기하고 나자 조금 슬픈 색이 더해졌다. (p.86)
이렇게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사람은 또 없다고 생각했다. 피차가 신기하게 여겻다. 언제부터 이렇게 같이 있게 되었지 싶을 정도였다. (p.108)
"엄마는 엄마고, 평생 내 엄마잖아." 그런 말을 당연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얼마나 많이 안아 주고 얼마나 큰 사랑이 축적됐는지를 생각하자... (p.113)
미치루가 생긴 후로 불안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p.141)
만약 지금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위험이 닥치면 그때처럼 자기가 어떻게 되든 돌아보지 않고 행동할 거야? (p.161)
그날 아침 이제 혼자가 된다는 생각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던 기억이 난다. (p.173)
인간의 슬픔은 치유되지 않는다. 거듭 쌓여 갈 뿐, 죽을 무렵에는 큼지막한 경단이 되어 있다.... 어떻게든 헤쳐 나갔겠지. 친구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친구들과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잖니. (p.179)
빼앗기만 하는 생물인데, 시간도 장소도 젖도. 그런데 아기는 어째서 한결같이 주기만 하는 존재인 걸까. (p.238)
그렇게 슬프고 멋진 일은 인생에 한 번이면 충분해요. (p.243)
내 안에 쌓여 있던, 산다는 것에 대한 강하고 즐거운 기분. 알고 싶고 무언가를 느끼고 싶은 욕구. (p.265)
할 일이 한 가지 더 생겨서 미래의 색이 조금 달라졌다. (p.267)
인생의 특별한 하루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확고하게 쌓아 올린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p.274)
힘겨웠던 일도 시간이라는 요소에 안겨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간다. 계속 집착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뿐이다. (p.294)
지금 억지를 부리면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고. 시기를 기다리라고. 일단 다 잊었을 무렵에 인연이 다시 돌아온다고...때를 기다리려고. (p.303)
우붓까지 쫓아왔는데, 내게 자신이 필요치 않다고 판단하자 돌아간 점. 하지만 역시 풀이 죽었던 점. 그리고 그다음에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점. 그럼에도 어딘가에는 간직하고 있었던 점. (p.351)
더 큰 의지의 발현과 그 의지를 알아봐주는 사람.
싫어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이제는 끝이다 싶은 경우도 많지만,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시간이 알아서 흘러가 숨통이 트이는 곳으로 나와 있곤 하잖니. (p.354)
언젠가는 만날 수 없으니까 지금. 매일 지겹도록 만나도 괜찮다. 그리고 그렇기에 싫다 않고 만날 수 있게 서로를 헤아리면 기묘한 마법이 생겨난다. 지나치게 들러붙거나 질투하고 울 틈이 없다는 뜻이다.(p.356)
미치루가 내게 온 후로는 전부 진짜야...그 아이가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어. 서로 알고 좋아하게 된다는 건 그런 거지. (p.396)
사랑에 대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 상태에 대하여 담담하고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눈물나게 질투날 정도로 뜨겁게 이야기하고 있다. 읽는 내내 그 멋진 팀의 일원이 되고 싶지만... 난 그 팀의 일원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시간이 3개월 넘게 걸렸다. 결정적 순간이 있다. 자신의 자리를 바라보게 되는 찰나의 순간. 손을 잡고 있지만 금을 밟고 서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멋진 팀의 팀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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