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두 번째 토끼가 되어주어야 한다.
나를 케어하는 것은 나다. 누구도 내 엄마가 아니다. 나는 어른이니까 내 감정은 내가 돌볼 수 있다.
뭔가 좀 슬프고 그래서 징징거리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가
잠깐 참았다.
그리고
걸으면서
두 번째 토끼가 되어주었다.
마스크가 고마웠고 비도 고마웠다.
내게 계속 이야기해주었고, 효과가 있었다.
온전히 사랑받는다고 느낌이었다.
사랑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걷기가 유효했던 것인지
두 번째 토끼가 유효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 감정을 말하지 않고 혼자 감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