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3개의 연작소설.
마르코,치유키, 의주와 의조, 유오, 소마, 톨가 무리의 이야기.
천선란 작가의 책은 흡입력이 매우 좋아서 책을 펼친 그 날 다 읽게 되는데 바다눈에서 은희의 목소리가… 예측이 가능한 순간부터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결국 책을 다 읽는데 2주 넘게 걸렸다.
구하는 이야기라더니… 세상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쳇
바다눈을 읽기 시작하면서 메트릭스가 떠올랐다.
진실과 허구. 나와 우리 모두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나는 알고 싶다.
읽는 내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의 성별이 애매하다고 느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책들도 비슷하지만 유독 천선란 작가의 글은 비주얼화가 쉬워서 영화라면 누굴 캐스팅할까? 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되는데…. 우주늪으로 들어가면서 애매하다…싶었고, 이끼숲에서는 아… 의도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상 세계에서 숲이 사라지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있는데
탄소를 줄이기 위해 숲을 전부 벌목해 새 나무를 심었어. 오래된 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낮다고 생각했거든. 나무를 심는 거니까 무조건 좋을 거라 생각한 거야. 종말 직전 이 행성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이 사십 퍼센트였는데, 삼십팔 퍼센트를 새 나무로 교체했어. 광합성이 잘 일어나는 품종으로, 십삼 년 동안.
…
그러다 나무 한 그루가 병에 걸렸고, 그 병이 순식간에 산림 전체에 퍼졌어. 나무에 벌레가 들끓고, 썩고, 곪았어. 다 똑같은 품종이라 그 어떤 나무도 피해 갈 수 없었대. P.180
다양성이 사라진 숲은… 결국 옛이야기로만 남게 되었다.
이 곳의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 이 곳에 남아서 그 사람을 응원해주는 사람. 이 곳을 유지하는 사람. 이 곳을 바꾸려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와 다른 포지션에 위치한 존재가 꽤나 불편하고 힘들지만 그래서 이 곳이 건재한 것이 아닐까?
너는 그 문을 열고 나가겠는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는 나가겠다고…
심지어 나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던 독서모임원들은 소마가 살아있다고 읽었고,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고 읽었는데…
조금 아쉽기는 소마가 정신을 잃고 눈을 뜨니 지상에서 이끼처럼 살아가고 있는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었다는 장면까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바다눈-
유오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해. 마음에 쫓길 필요 없어.”
“나는……“
”그래, 너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게 맞아.“ p.78
“근데 큰 차이점 하나가 있더라고. 그게 뭐게?”
“바다와 땅?”
“모험과 도망.”
하나는 대범했고 하나는 조급했다.
“발견과 추방.“
하나는 위대했고 하나는 초라했다.
”미지의 세계와 타락한 세계.”
하나는 신비로웠고 하나는 두려웠다.
“우린 산 채로 묻힌 거야.”
우리의 세계는 조급하고, 초라하고, 두려웠다. p.83
패배의 반대편에는 승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회사는 승리라는 단어를 거머쥐기에 정당하지 못했다. 커커스가 바랐던 것은 노동의 대가였고, 회사가 쥐고 있던 것은 커커스의 목숨이었다. 정당한 전투가 아니었다. 무기가 달랐고, 걸어둔 것이 달랐다. 회사는 승리하지 않았다. 커커스는 패배한 게 아니라, 밟혔다. P.89
-우주늪-
눈이 마주쳤을 때, 그러니까 지금 나를 본 건가? 싶었을 때 울고 싶었어. 일 초가 지나도 눈을 돌리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그 눈이 나는 너무 좋았어. 당장 환풍구 문을 뜯고 달려나가 끌어안고 싶었단다. 무작정. P.120
여기로 가면 냉동실, 위험.
이라고 썼던 글자 아래 누군가 이렇게 써놨더라고.
고마워요.
나는 멍하니 그 글자를 보았어.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는데 그러면 지워질 것 같아서 그러지 못하고 냄새를 맡았어. 쇳내밖에 나지 않는데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맡았어. 그러다 울었어. 몸을 부르르 떨며. 그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울음이야. 그토록 답답하고 억울해도 나오지 않던 울음이 그날 나왔어. 나 말고 누군가가,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이 좁은 통로를 기어가는 누군가가, 세상의 늪에 빠져버린 누군가가 또 있구나. 나에게 해야 할 게 생겼어. P.132
-이끼숲-
즐거운 생각을 할까 해. 소용이 없더라도 말이야.
방법은 건단해.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는 거지. 몸이 함께 기억하는 순간들. P.137
어쨌거나 나는 디에고를 끌어안던 톨가의 단단한 팔을 기억한다. 그 팔은 톨가가 만든 최초의 울타리다. 모험만을 꿈꾸던 톨가가 만든 오두막. 그곳에는 디에고가 있다. 이제 톨가는 태풍을 뚫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태풍으로부터 집을 지켜야 한다.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지겠지.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외골수가 되어가는 과정이니까. PP.184-185
비록 마르코는 별자리의 정확한 이름도 모르지만. 사랑한다는 게 반드시 그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므로. 잠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충분한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p.186
철새가 때가 되면 다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거. 따뜻한 곳을 찾아 계속 날아다니는 거지. 새들의 눈에는 방향을 알 수 있는 단백질이 있대. 지구의 자기장을 통해 방향을 감지한다는 거야. 모든 생명이 각자 자신만이 가진 방식으로 지구를 살고 있었어. 인간이 보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던 거지. p.195
그 줄에는 그 애의 이름도,그 애의 삶도, 그 애가 알고 있던 식물에 관한 지식도, 그 애의 그날 저녁 약속도 담기지 않는다. 그런 것의 집합이 그 애이지만 죽음은 간략하고 명료하다. 멀리서 보면, 별것이 아닌 한 줄이 된다. 그 애를 사랑했던 사람만이 그 한 줄을 뜯어 먹고 살 것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선과 선 사이에 촘촘히 박힌 삶을 그리워하면서.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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