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읽어야 할 책이 줄줄인데... 하나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인지라 계속 멈칫거리게 되던 어느 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읽은 책. 매력적인 이야기의 여러 가지 요소 중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투 비 컨티뉴드....
그는 불특정 다수를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자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익명으로라도 말을 아낀다. ... 게다가 글은 기록으로 남지 않나. 기록된 글이 얼마나 세상을 떠돌며 이리저리 오해될지 복희는 두렵다. ... 자신도 복희처럼 보는 건 많고 쓰는 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집 바깥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뜩 보고 들은 뒤 집안사람들에게만 공유하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p.29
나는 핵심만 명확하게 전달하는 말이나 글이 좋다. 구구절절 사설이 붙지 않는...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참 어렵다. 다른 불필요한 말들이 핵심을 흐리게 만드는 말을 한다. 이 과정이 사람을 참 지치게 만든다. 중요한 것에 집중시키지 못하는 대화. 서로에게 의미가 있을까? 불특정 다수를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자라는 글을 읽자마자 나다! 라고 생각하며 그럼 나는 불특정 다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글쓰기에 천재가 아닌 아니는 없었다. 동시에 계속해서 천재인 아이 역시 없었다. 꾸준히 쓰지 않는 이상 말이다. 반복하지 않으면 재능도 빛을 잃을 뿐. 즐기면서 계속 쓰라! 그는 아이들에게 탁월함과 성실함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주입식으로 교육하며 수많은 십대 작가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p.55
당신이 탁월함을 드러내었던 것은? 성실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이 세 가지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슬아는 청중과 함께 흔들리는 강연을 선호한다. ... 모든 청중이 슬아만큼이나 유구한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며, 누구든 진정으로 듣는 상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슬아의 역할은 훌륭한 스피커보다 훌륭한 모더레이터에 가까워진다. p.57
1년에 최소 2차례 이상 공개 수업을 하게된다. 신규때는 다른 수업보다 더 많이 준비하게 되고 작은 행동 하나까지 신경쓰며 불안했었다. 불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부분이었다. 정작 수업 당일은 꽤 즐거웠다. 당시에는 일을 마무리했다는 해방감이라고 느꼈었는데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흔들리는 강연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수업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제안한 방법이 있지만 내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공개 수업은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긴장감을 형성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긴장감은 서로에게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수업 시연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없는 상태에서 수업 상황을 연출한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연출하면 되는 것인데 40명의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수업보다 훨씬 어렵다. 오롯이 혼자여서.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함께 이루는 것이다.
최고의 권력은 발화권력인 법. p.59
"오랜만에 누군가의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보고 눈물이 차올랐어. 부엌에 가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럼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그냥 잘 먹겠습니다, 인사만 했어. 어무니한테 꼭 전해줘. 너무 맛있었구 행복했다구." p.147
"하지만 제일 중요한 우정인걸. 자기 자신과의 우정 말이야." p.156
"폴 발레리가 그랬어요." 복희는 폴 발레리가 누군지 모르지만 묻는다. "뭐라고 했는데요?"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대요.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 뿐이래요......" p.163
완전 공감.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다.
낮잠 출판사를 처음 차릴 때만 해도 슬아는 책 만드는 일이 딱히 두렵지 않았다. 잘 몰랐으니까. 몰라서 무턱대고 씩씩하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슬아는 그렇지 않다. 글쓴기와 출판이라는 작업이 갈수록 어렵게 다가온다. 책을 만들어 몇천 부씩 인쇄하는 것이 중대한 결정임을 알게 된 것이다. ... 그 두려움을 알게 된 것에 안도한다. 책을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자들이 출판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p.173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일이 있습니까?
가끔 졸업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찾아와서 내가 했음직한 말들을 들려준다. 그 말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내가 했음직한 행동을 이야기하며 감사하다고 한다. 학창 시절 만나게 되는 수십명의 어른 사람들 중 하나인데 기억해주어 고맙고, 그 기억이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숙희와 남희가 그렇듯 자신 앞의 생을 사느라 분주할 테니까. 그것을 기억해낸 슬아의 마음엔 산들바람이 분다. 관심받고 있다는 착각, 주인공이라는 오해를 툴툴 털어내자 기분좋은 자유가 드나든다. p.180
나는 수십명의 어른 사람들 중 하나일 뿐.
"네가 걷다가 고양이한테 인사하는 것처럼 나도 이 풀들을 보는 거야. 고양이나 얘네나 똑같이 귀하잖아." 복희의 말은 맞다. 고양이와 며느리배꼽은 똑같이 귀하다. 소, 돼지, 닭도 똑같이 귀하다. 그들은 모두 복희와 슬아만큼 귀하다. p.188
모든 생명은 귀하다. 그리고 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친근함과 만만함은 깻잎 한 장 차이일 수도 있어." ... "선생님은 먼저 선에 날 생이 합쳐진 말이잖아요. 먼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요." p.263
이 장에서 친절함은 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친절함이 전부가 되는 듯한 상황이 가끔 있다. 의사가 말을 이쁘게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정확하게 진단하고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친절함이라고 생각하는데... 태도의 친절함이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친절과 배려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수와 연수. 두 선생님 덕에 저는 두려움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당신의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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