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주.

쫌~ 2023. 10. 23. 21:24

처음 읽어보는 작가의 책. 시작하자마자 어머어마한 사건을 던졌다고 생각했다. 기자들 오고 난리 법석...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계속 이야기가 지지부진한 느낌이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딱 보여주지는 않고 어마어마한 사건이라 생각했던 첫 장면은 별것 아니었고... 그래서 책의 2/3 지점까지는 갑까-압한 마음이었다. 안갯속을 걷는 답답함.

나리가 수미에게 여안까지 운전해달라고 이야기하는 장면부터 달라졌다. 자신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는 힘을 내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주요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작가는 친절하게 인물들의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독자가 채워 넣어야 하는 행간이 많은 글이다. 

딴산 사람들은 서로를 유추하지 않았다. 그이가 결핵 환자였는지 천애 고아였는지 노숙 정신병자였는지 간질환자였는지 몸을 팔던 여자였는지 굳이 물어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만을 알았다. 어떤 이유로 들어왔든 딴산에 들어왔다는 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들에겐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한 몸을 누일 장소가 없었다. 있을 자리가 없었다. 죽을 데가 없었다. 그래서 딴산으로 들어갔다.  p.224
숨 좀 쉬라고 그랬지. 나리도 나리 엄마도.
만조 아줌마는 말했다. 이나리와 이나리 엄마한테 동시에 가지고 있던 어떤 연민에 대해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을 담고 있던 이나리라는 여자아이의 눈빛에 대해서, 
쓰이고 또 쓰이던 마음에 대해서.   p.282

어떤 연민. 
쓰이고 또 쓰이던 마음.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쓰이고 또 쓰이는 마음이 있다. 외면할 수 없는 마음. 나에게도 있다. 그런 마음이. 어느 순간 그 마음을 버거워하지 않기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 속에서 일어나는 쓰이고 또 쓰이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만 하기로 했다. 

레일 주위엔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눈이 마주쳐서 알 수 있었다고 수미는 말했다.  p.296

마주보아야 알 수 있다. 나 자신도 마주 보아야 죽어가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있다. 세상 어려운 일을 이리 쉽게 말하다니... 외면이 더 쉬운 선택이지만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순간이 한 번은 찾아오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나는 수미와 서하가 겨우내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 마음을 접어버리지 않았다고. 너한테 계속 자기 자신을 얘기하고 있다고. 너한테 순응하지 않았다고.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p.304
내가 나를 온전히 감각해본 순간을 거치고서야 수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 p.314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 이벤트가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변동을 가져왔다. 공동체의 미덕을 배우던 우리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자연스럽게 익히던 분위기에서 생존을 위해서 흩어지라고... 그동안 공동체 속에서 스스로를 버려두고 있었던 개인들에게는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챙길 수 있는 이 시공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리라. 나 역시!
이와 더불어 나는 또 다른 연결에 목마름을 느낀다. 기존의 관계성과는 다르지만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경험하는 순간들.

생태계에서 
인간 공동체를 넘어서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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