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 푸릇한 초원의 소녀를 바라보는 교복입은 남학생을 그린 표지까지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려나? 라는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예측이 깨어짐은 또 다른 즐거움이니... 책의 주인공(?)인 선우 혁은 13년 터울의 형이 있었다.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된 혁은 그동안 막연하게 그리워하던 형을 찾아(?)나선다. 형이 가족의 곁을 떠났을 때, 혁이는 겨우 5살이었다. 형과의 추억은 엄마와 아빠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에서 구성된 것인지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를 아끼는 가족들은 형과 여전히 함께 살아가지만 상처가 될까 서로 조심하며 생활하는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슬펐다. 상실은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거나 옅어지지 않는가보다. 좀더 능숙하게 감추거나 견디는 요령이 생기나보다.
"이게 다 그 잘난 메타버스 때문이지. 밤새 XR 헤드셋을 벗지 않으니 잠은 언제 자겠어?"
"그래서 지금 자요."
누군가 말했다. 그 즉시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제딴에는 재치 있는 농담이라 생각하나 본데, 전혀 아니다. 진짜 유머는 듣는 사람 누구도 불편하지 않아야 했다. 저렴하기 짝이 없는 유머에 결국 윤리 선생님이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p.34
"너도 학교 다녀 봐서 알잖아."
"....."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거. 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 봤자, 나는 애들에게 두 가지만 말하면 돼. 첫째."
나는 허공에 손가락 하나를 펼쳐 들어 보였다.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의 일방적인 감정과."
또 하나의 손가락이 고개를 들었다.
"너와 내가 단둘이 미술실에 있었다는 사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소식에 토끼처럼 귀를 세웠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흥미를 보이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참과 거짓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진실이라 믿으면 그만이니까. 허상은 비단 가상 세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
비록 나쁜 마음은 아니라 해도, 주희는 명백한 실수를 저질렀다. 상대의 마음을 멋대로 해석하고 단정 짓는 일이 얼마나 큰 폭력이 되는지. 그 사실을 주희는, 그리고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건 분명 상대가 아닌 나에게 가장 큰 아픔을 주는 일이다. pp.179-181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대범하든 그렇지 못하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p.187
청소년 소설이나 아동 문학에서 이런 장면들이 많으면 좋겠다. 학교 현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에 꼰대(?)스럽지 않게 적절한 가르침이 들어가서 좋다... 너무 교사같은가?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문제들은 교사나 부모가 개입해야만 하지만 요즘은 과하다. 자라는 기회와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사랑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요즘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적이 없었다. 형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형의 학교에 다닌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교실에서 웃는 아이들처럼, 형도 저랬겠지?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무리를 보면, 혹시 형도 저 골대에 공을 던졌을까? 그런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 느낌은 단순히 슬픔이 아니었다. 형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나에게 그리움은 불가능했다. p.41
그사이 나는 줄곧 형을 떠올렸다. 내 머릿속에 작은 기억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존재가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좋아했을까? 도운의 말처럼 누군가를 백 퍼센트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낳아 키운 부모님도,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친구도 형의 한 부분만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가 기억하는 것이 조각이 아닌 전체라 믿었다. p.188
우리는 우리 나름의 법칙과 진리대로 형을 조금씩 놓아주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누군가를 잊는다는 건,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잊힐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바위가 비바람에 조금씩 깎이고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p.197
가장 친했던 친구는 형이 무던한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오래전 담임은 조용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이라 했다. 그리고 엄마는 형을 애교 많은 수다쟁이 아들이라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상대만 알고 있다. 그러면 과연 곰솔이 가지고 있는 형의 남은 조각은 무엇일까? pp.203-204
부조는 그 나름의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다. 부조 작품을 보며 누구도 조각된 면 너머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타인이 보여 주는 모습을 존중하되, 그것이 전부라 단정 짓지 않으면 된다. p.243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엄마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를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건지... 5살에 형과 헤어진 혁도 마찬가지였을 듯. 내가 기억하는 순간이 없는데 무엇을 그리워할 수 있었을까? 엄마가 그리워하는 형을, 아빠가 그리워하는 형을, 형의 친구가 그리워하던 형을, 그들의 그리움에 공명하는 것 말고 자신과 형의 기억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나의 형을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게.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나의 모습이 다른 것은 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때문인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너의 모습도 내가 너에게 기대하는 것에 부응한 것이었을까? 세상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 받아들여질 수 있는 면만 보여주는 것이겠지? 내쳐짐을 당하는 것은 고통이니 친밀한 사이일수록 ... 나의 모든 면을 받아주는 상대가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 두는 일은, 타인이 아닌 낯선 스스로를 만나는 시간인 것 같아. 그 사실을 너를 통해 배웠어. p.121
이곳은 너의 시간이 고여 있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그 시간을 이대로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어. p.211
이야기에서 가장 속상했던 인물. 해송. 표현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상실과 애도를 그저 혼자 속으로 감내하던 해송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 혁을 통해 한 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둘의 시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상대가 사라지니 어떤 것도 표현할 수 없었는데... 그래도 했어야 했다. 슬픔을 표현하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열여덟의 해송이가 어서 30대의 해송이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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