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에 시작했던 독서 마라톤. 지역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데 일정 기간동안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는 행사이다. 이제 곧 끝나게 되는데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신 분들 일이 꽤 많아졌겠지만 참가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롭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자의 반 타의 반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피드백을 해주는데 은근 조언을 잘 따르는 귀 얇은 1인) 예약한 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도서관에 갔다가 계획에 없던 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독서라는 테마로 큐레이션 된 서가에 놓여있던 책. 독서의 기록. 여러 책 중 이 책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책 뒷면의 "독서가 여전히 취미로만 머물러 있다면 이제는 '기록'할 때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어떻게라는 궁금함도 있었고, 무용하지만 좋아하면 되는거지 꼭 무언가를 위해 수단화 시켜야하나라는 언짢음도 있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제임스 홀리스의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는 융 심리학에 기초한 심리 서적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품고 있던 바람들이 배우자에 대한 욕심임을 깨달았다. 모든 고뇌는 내 마음의 문제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었다. 독서를 눈으로만 하지 않고, 필사하며 읽기 시작했더니 책 속 말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p.42
독서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변하고자 하는 절실함때문이었다. 독서로 얻은 가장 값진 결과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문제를 내 안에서 찾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마음의 불편함과 분노를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가능해졌다. 두려움의 감정들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쌓인 스토리텔링의 결과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p.43
번아웃과 막연한 불안함으로 뒤척이던 어느 날,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깊은 자신만의 욕망을 갖고, 하루 두 시간 그 욕망을 위해 써야 하며, 매일 그 욕망을 꿈틀거릴 수 있게 돌봐주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p.46
하지만 변화는 필연적으로 마찰력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믿었고, 독서를 시작하기 전의 무기력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다. p.53
나를 위한 즐거움의 시간을 독서로 채울 무렵, 블로그에 도서 리뷰를 시작했다. 읽은 책을 리뷰하는 일은 어려웠다. 1권의 책을 읽는 행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3-4시간이 걸려 리뷰를 완성하면 녹초가 되었다. 독서는 매일 짬이 날 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글쓰기는 흐름이 끊기면 쓰기가 싫어지고 더 미루게 된다. 독서는 눈과 손을 이용해서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일이라면, 도서 리뷰는 저자의 이야기를 내 삶에 적용하고, 내 이야기로 탄생을 시키는 행위다. 당연히 독서보다 힘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p.233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상에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가지의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를 통해 또 다른 10가지의 이야기가 생겨난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여서 흥미롭지만 비슷해서 몰입되는 ... 재미있다는 말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어째 요즘 읽게 되는 책들이 나의 이야기를 쓰라는 것으로 마음을 몰아가네... 내 마음이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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