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보다는 따스함이라는
전해지는보다는 묻어나는이라고 쓰고 싶었다.
읽는 내내... 아 이 사람 단어 하나 하나를 참 신중하게 고르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참 이쁘게 묘사한다.
향수를 자아내는 '다케야'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내 목덜미를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그 바람이 '다케야' 뒤편 대나무 숲의 경사면을 순식간에 타고 올라가니 산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흔들린 수천만 장의 대나무 잎들이 듣기 좋은 마찰음을 일으켰고 그 소리가 이번엔 대나무 숲에서 이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딸랑......하고 처마 밑의 녹슨 풍경이 울었다.
바람이 멈추니 세상에서 갑자기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
아주 짧은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p.28-29)
불꽃이 타오른 후의 연기 냄새, 나쓰미의 유카타, 차가운 맥주, 그리고 방울벌레에 섞이기 시작한 귀뚜라미의 사랑 노래가 서서히 옅어져 가는 여름밤의 풍치에 애달픔을 더했다. (p.93)
지장 할아버지는 손에 들었던 술잔을 상 위에 탁 내려놓고 아직 반 정도 남은 청주를 응시했다. 지름이 5센티 정도 되는 둥근 수면이 형광등의 하얀빛을 받아 하늘하늘 흔들린다. 지장 할아버지의 입가에 아직 자그마한 미소가 걸려 있다. (p.99)
이 소설의 가장 멋진 부분은... 저자 후기이다.
소설의 모델이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가게.
지금도 내 마음속의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은 그 자그마한 가게와 두 분의 미소로 채워져 있습니다.라는 작가의 목소리
간만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구절들
운게쓰는 자신의 재능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스승인 뎃사이도 알고 있었지만 이 밖에 내지는 않았다. 스승으로서 그저 매일 꾸준히 자신이 지닌 최고의 기예를 제자에게 전수할 뿐이었다. (p.12)
이따는 아직 내가 찍는 사진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나쓰미가 말한 '멋진 사진작가'도 당연히 되리라고 확신했다.
마침 그즈음부터 상황이 서서히 바뀌었다. 주위 친구들은 꾸준히 결과를 내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못하고 홀로 남겨졌다. 멀어져 가는 친구들의 등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학교에만 가면 공연히 조바심이 나고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았고, 내가 품었던 자신감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근거'가 필요해서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대회에 닥치는 대로 응모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바라던 결과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벼락치기로 만들어 낸 작품으로 때우려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내가 낙선한 대회에서 입선하는 친구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역시 괴로웠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감을 상실해 갔다.
상 받은 사진이 실린 잡지를 학생 식당에서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는 친구들을 질투하는 동안, 그 질투심의 농도만큼 더러워진 필터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게 느껴졌다. (p.71-72)
지장 할아버지는 외동아들이니 게조의 석삼자는 셋째라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
"세 개의 은혜가 있으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더구나."
...
"응. 첫 번째 은혜는 이 세상에 태어난 기쁨. 두 번째는 부모에게 사랑받는 기쁨. 세 번째는 반려자와 함께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기쁨이라는군."
"그렇구나. 멋진 이름이네요, 정말."
(p.103)
"재능이란 건, 각오랑 같은 뜻이기도 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인간이라도 뭔가를 이루기 전에 포기하면 그 인간에겐 재능이 없었던 게 되지. 굳게 마음먹고 목숨이라도 걸 각오로 꿈을 이룰 때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녀석만 나중에 천재 소리 듣게 돼."
...
내 머릿속에서는 그 풍경이 딸랑, 하고 울었다.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