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무엇으로 사는가

쫌~ 2021. 11. 15. 15:43

 누구나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몇 가지 조건(씁쓸하지만 성별이 가장 큰 조건이 아닐까?)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떠올릴 즐겁지만은 않은 추억이 있으리라(아니라면 근사한 시절을 보낸 것이니... 부럽네)

 

 저 뒤에 벽에 붙어있는 종이 중에 하나는 유도 단증이다. 올림픽에서 유도를 본 초등학생이 나도 저런 옷을 입고 저렇게 사람을 던져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망설이다 직장 근처에 유도 도장을 찾아갔다. 아마 함께 가보자고 내 등을 살짝 떠밀어 주었던 친구가 없었다면 아직까지도 유도 도장을 보기만 했을지 모른다. 이미 몸은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렇다고 근력이 있지도 않은... 그런 삼십대 직장인. 직장 선배들은 진심어린 충고로 "마흔이 되면 사람이 훅~ 가더라. 심하게 앓고 체력이 안 돌아온다. 미리 대비해."라는 말들은 살짝 무시하며 지냈었다. 아직까지는 좀 피곤하지만 그래도!!! 주말에 좀 몰아자면 거뜬한 삼십대!!! 였으니.

 쭈볏거리며 들어 간 유도 도장은 지하이기도 했고, 땀에 쩔은 도복들이 많기도 해서 퀘퀘한 냄새와 함께 썩 친절하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은 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살짝 망설였다. 그 때, 매트 위에서 수련하고 있던 여대생 한 명이 살갑게 말을 붙이며 또래 여학생이 한 명 더 있다고 이야기하며 언니들도 같이 운동하면 좋겠다고 하였고... 그 영업에 홀랑 넘어가서 등록을 했다. 그 여학생의 꼬질꼬질한 도복과 검은 띠가 너무나 멋져 보였기에...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꾸준한 가시성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고

 매일 도장에 갔다. 정말 못했다. 제일 뻣뻣했고, 준비 운동부터 헉헉거릴만큼 체력도 바닥이었다. 하지만 도복을 입고 띠를 조여매는 그 순간이 좋았고, 관장님께서 이렇게 매는거야라며 허리에 띠를 꽉 조여매주던 그 느낌이 마음을 다잡게 하였고, 매일 도장에 나와있던 여대생 2명(대학생이면 얼마나 바쁠 시기인가!!)과 무도인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었던 선배들이 있어 즐겁게 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정말 같이 운동하기 싫은 사람도 있었다. 준비 운동이 끝나면 서로를  메치는 연습을 매일 10회 정도 했다. 준비 운동 개념이기에 마지막 바닥에 던지는 순간 도복 깃을 잡아당겨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을 잡아주는 것이 이제 막 유도를 시작한 초심자들을 위한 선배들의 배려를 몸으로 매일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심지어 아들뻘되는 초등학생도 나를 메치는 순간에는 바닥에 살짝 내려놓아주었다. 근데!!! 그 사람은 정말 누군가를 메치기 위해서 도장에 오는 것 같았다. 2줄로 서로 마주보고 서서 몇 번의 연습 후 짝을 바꾸어 연습하는데 그 사람은 늘 나와 내 친구를 함부로 대했다. 그는 초심자 3번이었다. 다른 또래인 여학생들은 꽤 유단자였는데 누가 보아도 자기보다 좀 약한 사람에게 막대하는 태도가 기분 나빴다. 

 직장이 한창 바쁜 시기가 있다. 그럴때는 귀찮아서 건너뛰고 싶기도 했다. 한 여름 덥고 비가 왕창 내려 습할때면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제대로 없는 샤워실은 남녀공용(샤워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하나 뿐인 도장에 가기 싫었다. 한 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도복 입는 법을 알려주며 끈을 단단하게 묶어주시던 관장님이 여자부 대회 함 나가자라고 이야기해주셨던(인사말이었겠지만)그 말이. 매일 도장을 지키는 여대생의 언니 같이 해요. 초심자를 배려해 주던 운동 선배 고등학생들(실은 운동하는 고등학생들에 대한 안좋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금요일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갈 때는 도복을 띠로 묶고 어깨에 걸치고 으쓱으쓱 걸어가던 그 기분이 나에게 멋진 꿈을 안겨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내가 그리웠다. 코로나 단계도 풀리고... 물론 아직 쫄보라서 외식도 시작안했지만 몇 년 전 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관두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작가님들은 모르시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이런 불씨를 던진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심지어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트위터에서 여가여배를 보았지만 선뜻 용기가 없어 신청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조금 타박했다.

 무엇으로 사는가? 근력으로 산다! 그리고 직장 괴담은 진실이다. 마흔 맞이 병이 있다. 이때 훅~ 가버린 체력은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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