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곳

너에게도 메리크리스마스이길

쫌~ 2022. 12. 26. 10:36

12.25. 온정과 사랑이 넘치는 날.
처음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던 날. 백운대 근처에서 보았던 까만 고양이가 있었다. 너무 작은 고양이가 정상 부근에 있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것일까? 궁금해하며 그날 가방에 있던 사료를 주었는데 키튼용임에도 씹어 먹지를 못했다. 가방에 츄르 2개와 사료만 있어서 츄르를 까서 줬더니 겨우 조금 받아먹고 그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아기였다. 그날 이후로 그 모습이 내내 밟혔는데... 솔직히 백운대까지 올라가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어서 한 달 정도 지난 뒤에야 다시 오르게 되었다. 처음 북한산에서 만났던 고양이들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녀석들을 보게 되어서 백운대 막내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백운대에 올라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녀석을 볼 수 없었는데 녀석을 처음 보았던 그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김밥을 먹고 있자니 어디에선가 까만 자태를 드러내고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꽤나 체구가 커졌고 이제 제법 아기티도 벗은 녀석이 너무 대견했다. 녀석에게 주려고 챙겨 왔던 사료를 꺼내어 주자 이제 제법 오도독 잘 먹는 모습에 감사했다. 그때 어떤 분이 삶아 온 닭가슴살을 녀석에게 주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가끔 산에 올 때, 챙겨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녀석을 이렇게 키워준 손길들이 있음에 마음이 놓이면서 그 발길이 끊이지 않길 빌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현수막이다. 국립공원 내에 유기견과 들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무심코 건네는 먹이들이 소형야생동물의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그럼 들고양이와 유기견은 굶어 죽게 두거나 얼어 죽게 두어야 하는 것인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일까? 버린 새끼들은 그냥 망할 놈이라고 욕하고 끝나면 되는 건가?
얼마 전 즐겨보던 등산 유튜버의 영상에 담긴 백운대의 장면 속에서 스윽~ 지나가는 백운대 막내의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녀석이 어떻게 지내나 걱정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가 너에게도 메리크리스마스이길 바라며...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나섰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너무 어두워서 하루재에서 보던 녀석들은 보지 못했지만 하루재를 지나면서 마중 나온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목에 염주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절에서 밥 얻어먹는 녀석인가 보다 싶었다. 발라당 드러누워서 애교를 부리고 발걸음을 멈추니 울며 보채기 시작해서 챙겨 온 사료를 주었다. 날이 너무 추워 물과 습사료가 금세 얼어붙었다. 딱 먹을 만큼 얻어먹고는 다른 등산객들에게 다가가는 녀석을 보면서 이 구역에서 저 녀석은 잘 지내는구나... 싶기도 했고, 금세 얼어붙는 사료와 물을 보니 정상 막내는 더 척박하겠구나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바람이 꽤나 매서웠고 바위들이 미끄러웠지만 막내를 만났던 장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이 나타나질 않아 마음 무겁게 두리번거렸는데... 바로 아래쪽에 있던 일행에게 연락이 왔다. 여기에 까만 녀석이 있다고... 내려오면 만날 수 있다고... 반가운 마음에 한가득이었지만 내가 내려가는 사이에 녀석이 종종거리며 어딘가로 가버릴까 봐 조급했다. 그리고 남은 사료가 파우치 한 개뿐이어서 ㅠㅠ 하지만 발걸음이 느린 나를 기다리고 있던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하나뿐인 사료였지만 신나게 갑자기 등장한 치즈에게 양보하면서 먹고, 따뜻한 물을 한 사발 다 들이켜고 몸단장까지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솔직히 잘 모르지만 나도 추운 날 따뜻한 국물이나 물을 마시면 몸도 풀리고 한결 낫다 싶으니... 고양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 구하기 어렵다고 날도 차가운데 찬물을 주면 별로일 듯하여 뜨거운 물이랑 섞어서 따스한 물을 준 것인데... 물이서 그런 건지... 따스한 물이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한 그릇 뚝딱 먹는 모습에 좋으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사료가 조금 남은 그릇에 따스한 물을 섞어 주었는데, 막내 녀석은 먹지 않던데 난데없이 나타난 치즈가 홀랑 다 마시더라. 배가 많이 고팠던가보다.


녀석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릇을 챙겨 내려왔다. 그 잠깐 서서 기다리는데 양말도 신고 신발도 신은 주제에 발가락이 손가락이 시리다고 종종거렸다. 밤새도록 그 차가운 바람을 혼자 견디는 녀석들도 있는데... 길고양이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고 들었다. 녀석이 지내는 그 시간 동안 북한산이 신나고 즐거웠던 삶의 터전이 되길 바란다. 녀석들에게도 또 다른 야생동물들에게도 살기 좋은 북한산을 만들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북한산 생명체들
백운대에 오르기 전 암문에서 유기된 시바견을 만났다.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녀석이 바들바들 떨면서 눈밭을 걸어가는데 고양이 간식인 손가락 한 마디정도 밖에 안 되는 닭고기가 주머니에 있어 그거라도 먹으라고 던져주었는데 눈이 깊어 한입거리도 안 되는 그것마저 눈 속에 파묻혔다. 용하게 그 한 줌도 안 되는 것을 찾아 먹고는 쳐다보는데 더 이상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쳐다보던 녀석이 눈밭으로 사라져 갔다. 녀석이 구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수락산에서 십여 마리의 유기견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시바견, 토이푸들, 포메, 스피츠들... 버려진 이 녀석들은 12.29. 안락사 예정이라고 하였다. 저 개들이 들개일까? 정말 길에서 사는 개들이 낳은 들개일까? 누가 봐도 유기견인데... 버린 망할 새끼는 지 살겠다고 입에 밥 처넣고 밤에는 바람 막아주는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처자겠지. 동물을 사고파는 일부터 못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인형이 아닌데... 상품이 아닌데... 생명존중교육의 대상은 인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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