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픈

차별(복장터지지만)과 연대(재미있다.)의 역사

쫌~ 2024. 6. 8. 16:29

 읽으면서 떠오르는 몇 몇 소설들이 있었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헬프. 성별에 의한 차별이 자연스러웠던 1960년대를 배경로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의 인생을 통하여 불평등 문화를 유쾌하게(엘리자베스와 소설 속 여성들이 당하는 일들은 엄청난 무게로 마음을 짓누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방법으로 맞서고 느리지만 멈추지 않기에 유쾌하다고 쓰고 싶다.) 비웃어 준다. (작가가 유머러스하게 비꼬기를 잘한다.) 문화가 된 차별의 일상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문을 갖지 않고 차별을 답습하며 스스로 각자의 한계를 만든다. 큰 물결을 만들게 되는 작은 변화는 연대에서 시작된다. 차별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학(변화) 이야기.
레슨 인 케미스트리.

 성별, 종교, 인종, 성적지향성, 어린이, 동물, 사회적 지위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아닌 척 가면을 쓰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요즘) 도 일상에 만연한 것 같은데...(무지한 나의 착각이면 좋겠지만) 책을 읽으며 느꼈던 답답함과 분노가 완전한 과거가 되는 날이 오겠지. 

 엘리자베스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반응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손바닥이 필요하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변화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다. 각자 소통하게 되는 지점이 다르고 인격적으로 결함없는 고상한 사람들도 아니지만 그들을 통해 이 이야기는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지난 해에 전국에 있던 교사들(교사 집단을 이렇게 하나로 모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이 한 곳에 모였다. 하나의 검은 점들이 모여 파도를 만들고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연대의 힘을 믿어본다. 

 사람들은 60년대에 시민운동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때 시민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그 뒤로도 60년이나 그 운동을 질질 끌리라고는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당시는 세계대전이 끝나고 비밀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을 품고서 뭐든 할 수 있다고 낙관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p.11

"케임브리지에 있을 때, 여성 과학자들을 얼마나 알고 지냈나요?"
"여자는 없었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남자뿐이라서요."
"아, 그렇군요. 하지만 그래도 분명 어딘가에선 여자도 같은 기회를 받고 있었을 거잖아요? 여성 과학자를 몇 명이나 알고 있어요? 퀴리 부인 빼고요."
 켈빈은 이제야 문제가 뭔지 인식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켈빈, 문제가 뭐냐면요. 이 세상 인구의 절반이 쓰이지도 않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연구를 완수할 만큼 물품을 지원받지 못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문제는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여자들이 대학에 간다 해도 케임브리지 같은 곳은 못 다녀요. 그 말은 여자에게 남자와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고, 따라서 동등한 존중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죠. 여자들은 맨 아래에서 시작하지만 더는 높이 올라가지 못할 거예요. 임금차별은 두말할 것도 없어요. 이건 모두 애초에 여자들이 남자들만 받아주는 학교에 입학할 수 없어서 생긴 문제예요." p.52

"5년 새 벌써 세 번째로 후보가 되었다고, 나는 내가 세운 업적으로 평가받고 싶어. 네가 나 대신 연구해줬다는 평을 듣고 싶지 않단 말이야."
"널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리 없잖아."
 그 말에 터퍼웨이에서 공기를 뺀 다음 엘리자베스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게 문제야. 날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p.85

"음. 그러죠. 어쩌면 이건 충고가 아닐 수 있으니까. 말하자면 요령에 가까워요."
 엘리자베스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요. 매일."
"시간이라고요?"
"자신이 최우선이 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오롯이 나만의 시간요. 아기도, 일도, 죽은 에번스 씨도, 더러운 집도 다 제쳐두고요. 딱 나를 위한, 엘리자베스 조트를 위한 시간을 가져봐요. 뭘 필요로 하든, 뭘 원하든, 뭘 찾든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욕구를 충실하게 추구해봐요."
 해리엇은 목걸이를 홱 잡아당기더니 덧붙였다.
"그런 다음에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죠."   pp.248-249

 엘리자베서는 그가 솔직하게 말한 것이기를 바랐다. 사실은 그녀도 다시 배를 타고 싶었으니까. 물론 몸이야 기진맥진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조정이 재미있는 점은 말이죠. 앞을 보지 못하고 노를 저어야 한다는 거예요. 조정이라는 운동은 마치 우리에게 자신을 앞서가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같달까요."
 메이슨 박사는 계속 말하며 차 문을 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조정은 아이 키우는 거랑 아주 흡사합니다. 조정도 육아도 인내심과 지구력, 힘과 헌신이 필요하니까요.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 보지 못한다는 것도 그래요. 오로지 우리가 어디까지 왔나만 볼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안심이 됩니다. 안 그래요? 물론 배가 뒤집어지는 일만 없으면 말이죠. 뒤집어지면 정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배는 뒤집어진다 해도, 아이도 뒤집어지나요?"
 메이슨은 차에 타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이들은 정신이 회까닥 뒤집어지죠. 어제 우리 애 하나가 다른 애를 삽으로 때렸어요."  p.276

 해리엇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하는 척이라도 할 순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장단을 맞춰주라는 거죠."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단을 맞춰주라고요?"
 "내 말 알잖아요. 당신은 똑똑해요. 파인 씨나 레벤스멀이라는 인간은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어요. 남자들이 어떤지 당신도 알면서."
 엘리자베스는 이 말을 생각해보았다. 아니, 자신은 남자들이 어떤지 모른다. 켈빈과 죽은 오빠 존, 메이슨 박사는 빼고, 어쩌면 월터 파인까지 제하더라도, 이제껏 봐온 남자들은 최악이었다. 남자들은 엘리자베스를 멋대로 휘두르고, 만지고, 지배하고, 입 다물리고, 교정하고,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어 했다. 왜 남자들은 자신을 평등한 인간으로, 동료로, 친구로, 동등한 존재로, 하다못해 그냥 길거리에 지나가는 낯선 사람으로도 봐주지 않는 걸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인 다음 뒷마당에 묻어놓았다가 발각된 범죄자를 맞닥뜨린 게 아니고서야 누굴 처음 봤으면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여겨야 하는 것 아니야?   p.46(2권)

"그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뭐예요?"
"네가 선택하는 것들이지.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너를 너답게 만든단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해요. 노예처럼요."
"뭐. 그것도 사실이구나."
 아이의 말에 담긴 단순한 진리에 목사는 어쩐지 분해졌다.  p.60(2권)

"왜 우리 엄마가 이토록 인기가 많을까요?"
"왜냐면 생각한 바를 정확히 말하기 때문이야.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거든. 그리고 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아주아주 맛있단다. 게다가 사람들은 다들 화학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묘한 일이지."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왜 드문데요?"
"그러면 뒤따라오는 결과가 있기 때문이야."   p.131(2권)

  엘리자베스는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머저리도 이 점엔 분명히 동감하겠지요. 제일 어려운 일은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럴 용기를 갖는 거란 사실을요."
 그녀는 종이를 얹은 이젤로 성킁성큼 걸어가서 마커를 쥐고 "화학은 변화다"라는 문장을 쓰고서 방청객을 돌아보았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p.236(2권)

Q 저녁에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A  여섯시-삼십분과 오랫동안 산책합니다. 가장 깊은 비밀과 가장 슬픈 그리움을 함께 나눌 친구가 있다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행운입니다.  p.281(2권)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말했다. 
"그러면 오늘 6시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해요. 우리 집 실험실에서 모두 함께요. 에이버리와 윌슨, 매드와 여섯시-삼십분, 해리엇, 월터와 어맨다까지 모여서요. 조만간 웨이클리와 메이슨도 만나보셔야 할 거예요. 온 가족을 보셔야죠."
 에이버리 파커는 미소를 지었다. 켈빈과 아주 비슷한 미소였다. 그녀는 돌아서서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았다. 
"그래요. 온 가족이 모여서요."   p.278(2권)